김춘도순경의 죽음은 한총련의 「조국의 평화실현과 자매결연을 위한 예비회담」 강행에서 비롯됐다.12일 상오 10시께부터 연세대 도서관앞에 모인 학생 3천여명은 「예비회담 수사결의대회」를 갖고 낮 12시께 교문진출을 시도했다.
정부의 판문점 예비회담 불허방침에 따라 경찰이 예상대로 교문을 봉쇄하자 학생들은 연신내 4거리에 재집결하기로 하고 삼삼오오 학교를 빠져나갔다.
하오 3시계 연신내 4거리에 모인 학생 2천여명은 경찰이 다시 저지선을 설치하자 길에 앉거나 누워 비폭력시위를 벌였다.
경찰도 충돌을 피하기 위해 흥분하기 쉬운 전·의경대신 형사기동대를 전면에 세우고 해산을 종용했다.
학생들이 해산을 거부하자 하오 4시5분께부터 경찰은 최루탄은 한발도 쏘지 않은채 학생들을 시위대에서 끌어내 전경버스에 실어 격리연행하는 방식의 해산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의 일부 몸싸움이 벌어지면서 시위대중 5백여명이 갈현시장쪽으로 달아났고 기동대가 추격해 들어가며 치고받는 공방전이 벌어졌다.
5∼10분간 시장골목안에서 밀고 당기는 몸싸움과 일부 격투도 벌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이때 학생들이 돌과 각목을 사용했다고 밝혔지만 학생들은 『처음부터 시위용품은 갖고 있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런 골목공방와중에 하오 4시15분께 김 순경이 경산빌딩 앞 횡단보도에 쓰러졌고 인근 청구성심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소생이 불가능한 상태였다.<최성욱기자>최성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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