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4·19맥 잇는 민주화운동/새정부,변화·개혁으로 당시 목표완성”김영삼대통령은 10일 「6·10 민주화항쟁」 6주년을 맞아 6·10에 대한 성격규정을 했다.
87년 6월 민주화운동 당시의 주역 17명을 청와대로 초청,오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역사적 재조명을 한 것이다.
김 대통령은 『6·10 민주화항쟁은 3·1운동과 4·19혁명 및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에 서있다』며 『우리 문민정부의 출범도 바로 6·10 민주화항쟁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대통령은 6·10을 「명예혁명」이라고도 규정하면서 『문민정부는 6·10 민주화항쟁의 기본목표를 완성하기 위해 변화와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6·10」이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함께 문민정부 출범의 모태가 됐음을 분명히한 것이다.
김 대통령은 취임후 4·19를 혁명으로 재평가하고 12·12를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한데 이어 5·18에 대한 위상을 재정립했고 이제 다시 6·10에 대한 역사적 자리매김을 했다. 30여년에 걸친 어두웠던 군사정부 시절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일련의 재조명작업을 어느 정도 마친 셈이다.
김 대통령은 이날 6·10에 대해 민주화항쟁과 민주화운동이란 용어를 혼용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비서실에서 준비한 발언자료를 수정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 준비한 자료에는 6·29에 대해 「희생을 줄이는 계기」라고 표현한 대목이 들어있었다는 후문이다.
이로 미루어 새정부의 6·29에 대한 입장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6·29는 6·10 민주화항쟁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일어난 「결과물」이라는 평가일 것이다.
○…이날 예의 칼국수를 식단으로 해 1시간30분 가량 진행된 오찬자리에서는 6·10 당시의 회고뿐 아니라 새정부의 개혁정책을 둘러싸고 많은 의견들이 오갔다.
이 자리에는 당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의 상임 공동대표였던 김승훈신부,박형규목사,고은시인 양순직의원(무),공동대표였던 이돈명변호사 최형우(민자) 제정구의원(민주),집행위원이었던 오충일 인명진목사 이상수변호사,연행됐던 이애주교수 송월주스님 김동완 금영균목사 이규택(민주) 박종웅의원(민자) 소설가 유시춘씨 등이 참석했다.
다음은 발언요지다.
▲김 대통령=6·10 민주화항쟁은 길이길이 역사에 조명돼야 한다. 과거에 6·10의 성격이 잘못 오도돼왔지만 독재정권은 국민에 의해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겨주고 있다. 당시 야당 재야 학생뿐 아니라 넥타이를 맨 중산층까지 참여한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개혁은 임기말까지 한치의 흔들림없이 계속 추진될 것이다.
▲박형규목사=오늘 아침 국민운동본부 지도자들이 성공회에 다시 모였었다.
▲금영균목사=개혁에 대해 국민지지가 높지만 동·면사무소에 들렀을 때나 교통순경을 접할 때 피부로 『변했구나』하는 느낌을 받도록 해야 한다.
▲김 대통령=국민들의 고통분담 의식이 엷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가진 자들이 고통을 더 분담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송월주스님=역대 정권도 정통성은 없지만 개혁을 추진,처음엔 많은 박수를 받았다. 새 정부도 개혁을 계속할지 의문이다. 제도개혁의 뒷받침이 미흡하다.
▲오충일목사=아직 구속중인 학생들을 특사로 풀어달라.
▲김 대통령=사정은 법에 의해 당당히 하는 것이다. 문제는 법을 지키려는 의지와 결단이 없는 것이다. 학생들을 이해했기에 법무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담하게 풀어주라고 했는데 학생들은 정직하지 못했다. 평화시위를 약속해놓고 어떻게 했는가. 법무부 보기가 부끄러웠다. 그렇지만 기회를 보아 검토하겠다. 경제정의실현은 나의 최종 목표다. 부의 편재도 시정하겠다. 그러나 한꺼번에 다할 수는 없다. 한국사람은 너무 급하다(좌중 폭소).
▲제정구의원=6·10 항쟁은 지역·계층간 구별없이 국민적 통합으로 이뤄낸 역사적 사건이다. 김 대통령이 임기후 6월 혁명을 마무리한 대통령으로 남기를 바란다.
▲유시춘씨=학생들을 풀어주니 문제를 일으킨다고만 하지말고 다시한번 대담하게 풀어주고 문제를 일으키면 사법처리를 해도 좋다.
▲김 대통령=나는 다시 선거에 나오지 않을 것이기에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혼신의 힘을 쏟아 나라를 살릴 것이다. 여기 계신분들이 각기 소신에 따라 이편 저편에 설수는 있으나 크게 보아 나라부터 살리는게 중요하다.
○…이날 오찬에 참석,공개행보를 시작한 최형우의원은 별다른 발언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오찬후 김 대통령과의 별도 면담도 없었다.
이날 모임은 김 대통령이 민주화투쟁 당시를 회고하면서 재야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개혁에 대한 의지를 새롭게 다진 자리였다.<최규식기자>최규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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