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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과 개혁의지/정운찬(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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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과 개혁의지/정운찬(한국논단)

입력
1993.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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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부의 경제개혁 의지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단기적인 경기부양에 집착하느라 장기적인 체질개선을 소홀히 해온 경제팀이 (주)한양 처리로 도전을 받은 것이다.「한양」하면 압구정동이 연상될 정도로 한양은 한때 현대와 함께 고급아파트로 명성을 날렸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양은 다르다. 신도시에서의 각종 부실공사로 새로 짓는 아파트 입주예정자들이 중도금 납부를 미룰 정도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한양도 다른 대부분의 한국기업들처럼 고질병인 「규모확대증」에 걸렸다. 적당한 영업규모에서 좋은 아파트를 지어 팔겠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규모를 늘릴까에만 골몰하였다. 한양은 급속도로 컸다. 그러나 무리하게 크자니 정치권과 결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가락동의 민자당 연수원 사건이었음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또한 한양은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는 노사분규로 시달려왔다.

무리한 규모확대,정경유착,노사분규 등의 문제를 안고 있는 기업이 양질의 물건을 만들어 낼리는 없다. 기업부실이 세상에 알려지자 현금흐름이 나빠지고 채권자들은 너도나도 먼저 빚을 받아내려고 애썼다. 한양은 부도위기에 몰리고 한양의 주거래은행인 상업은행은 사태가 심상치 않자 재빠른 행보로 한양의 법정관리를 신청하였다.

정부도 코너에 몰렸다. 한창 경기를 챙기고 있는 마당에 도산을 허용하자니 가뜩이나 침체된 기업의욕이 얼어붙을 것이 두려웠고 또 1만8천세대의 아파트 입주예정자,5천여개의 하청업체,그리고 2만명의 종업원(이 가운데 1만8천명은 일용노동자)들이 가만히 있을리 없었다. 그리고 한양을 일반 건설업체에 떠 맡기자니 과거의 예로 보아 특혜시비가 일 것이 뻔했다. 궁여지책으로 정부는 주택공사가 한양을 인수토록 하였다.

나는 기회있을 때마다 한국에서 자본주의가 정착되려면 기업의 진입의 자유가 허용되고 또 크기에 관계없이 퇴출의 엄정성이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부실기업은 도태되어야 한다. 따라서 한양은 청산되어야 한다. 한양은 건설장비와 부동산이 많다. 이것들을 팔아 부채를 해결하고 한양은 정리해야 한다. 원매자가 없으면 정부가 사들여서라도 부채해결을 도와야 한다. 그리고 한양이 짓던 아파트는 건설공제조합이나 민간건설업자들이 나누어서 완성케하면 된다. 또한 하청업자들은 한양으로부터 받을 돈받고 다른 건설업체와 거래토록하며,한양의 정규직원 역시 체임과 퇴직금을 받은뒤 다른 일터를 찾도록 해야 한다. 일용근로자도 다른 건설업체에 가서 일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어렵다면 정부가 나서서 도와주도록 하자. 그 과정에서 고통이 따를 것을 모르는바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도 없이 한국경제가 체질개선할 길은 없다. 주공의 한양 인수는 단지 고통을 잠시 유보하는 것이지 고통을 없애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치를 비용은 빨리 치르는 것이 좋다.

상업은행은 한양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 한양은 이미 7년전에 한은특융을 재원으로 한 산업합리화 자금을 받고도 무리한 확장끝에 벼랑에 다다른 것이다. 그 원인은 1차적으로 한양의 방만한 경영에 있다. 그러나 부실경영의 적신호를 일찍 파악하지 못했거나 파악했더라도 이런저런 이유로 방관하면서 1조원의 여신을 제공한 상업은행도 책임이 크다. 상업은행은 눈앞의 문제를 호도할 것이 아니라 대손상각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정공법으로 나서야 한다. 그것만이 현재 은행 가운데서 가장 부실한 상업은행이 스스로 경영합리화의 길을 찾아 나서도록 하는 자극제가 될 것이다.

한편 주공이 한양을 인수하는데에도 문제가 많다. 주공 자체가 주택·토지 등의 미분양상태로 자금사정이 좋지 않을뿐 아니라 주공의 경영진이 한양을 인수한다고 해서 한양의 경영사태가 나아질리는 없다. 공기업 경영에 익숙해있는 인사들이 자기보다도 덩치가 큰 한양을 운영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한양이 좋아지기는 커녕 주공마저 부실화될 것이 걱정된다. 또한 주공은 공공부문에 속하며 서민주택 전문공급기관인데 대형 민간주택 공급회사인 자회사를 둔다는 것은 명분이 없다.

정부의 태도도 문제다. 한양의 도산은 일시적으로 경제에 충격을 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잘 하는 기업은 보상을 받되 못하는 기업은 페널티를 지불하는 원칙을 확립하는 것이 경제개혁의 지름길이고 또 경제개혁을 통해서만 체질개선을 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상업은행과 주공은 이미 한양인수를 위한 가계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식계약은 아직 멀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한양은 정리되어야 한다. 진입의 자유와 퇴출의 엄정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제2,제3의 한양이 계속 나올 것이다. 지금 호미로 막을 수 있는 흠을,삽이나 불도저로도 막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질까봐 두렵다.

역대 정권이 한번도 제대로 해결못한 부실기업 문제를 김영삼정부가 현명하게 처리함으로써 개혁의지를 보여주기 바란다.<서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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