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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작은 축제/김성우 본사 상임고문·논설위원(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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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작은 축제/김성우 본사 상임고문·논설위원(문화칼럼)

입력
1993.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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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이쑤시개다」라고 말하면 문화는 발끈할 것이고 이쑤시개는 우쭐할 것인가.「문화는 소화제다」라고 말하면 소화 안되는 사람은 다 문화를 찾아 몰려올 것이가.

이런 엉뚱한 생각이 나는 것은 지난 5월18일부터 세종문화회관 뒤뜰에서 열리고 있는 「분수대광장 작은축제」를 보고서다. 매일 낮 12시30분부터 30분동안 가설무대에서 음악 무용 등이 공연된다. 서울시립의 교향악단,국악관현악단,무용단,합창단,가무단 등 세종문화회관 산하의 공연단체외에 발레단과 가수들이 초청되어 출연한다. 짧은 공연시간이라 소품들일 수밖에 없지만 프로그램은 날마다 바뀐다. 공연장인 분수대광장은 높고 낮은 건물들로 빙 둘러 싸였다. 콘크리트벽의 포위다. 무슨 도시극의 세트같기도 하다. 건물마다에서 창문들이 눈을 뜨고 내다보고 있다.

모인 관객들은 인근의 이 건물들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이다. 12시에 사무실에서 나와 부리나케 점심을 먹고는 이 야외공연장에 자리잡는다. 세종문화회관의 뒤쪽 계단이 객석이 된다. 이 계단이 빽빽이 차고도 모자라 분수대 둘레를 빙둘러앉고 많은 사람은 분수대 뒤쪽에 몇겹으로 선다. 하루 1천5백명 이상씩 모인다. 관중은 거의 가 넥타이를 맨 하얀 와이셔츠 차림인 것이 특색이다. 마치 운동장 스타디움의 응원석 같다. 무대공연이라면 대개가 학생들이요,음악회라면 여성들이 주로 자리를 메우게 마련인데 여기는 학생들이 모여 들만한 장소도 아니요,여성들도 수가 남성보다 적다. 이런 남성직장인 중심의 객석구성은 특이한 것이다. 이것이 이 작은 축제의 색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관중들은 진지하다. 박수에 호의가 있다. 공연이 끝나면 차 한잔 마시고 난듯이 일어서서 근처의 각 건물로 빨려 들어간다.

세종문화회관이 이 「작은축제」를 시작한 것은 작년 가을이었다. 그때의 반응에 힘을 얻어 올해는 봄 가을 두차례 갖기로 하고 봄공연 일수도 20일로 늘렸다. 관객은 작년보다 더 많아졌다. 6월9일까지 분수대광장에서의 공연이 끝나면 11일부터 16일까지 종묘광장과 파리공원으로 장소를 옮겨 연장공연할 예정이다. 그만큼 시민들이 호응이 크다.

샐러리맨들이 점심식사 직후 잠시 가설무대 앞에 앉을때 이 문화의 위안은 이들에게 이쑤시개일 것이고 소화제일 것이다. 사무실의 직무속에는 늘 이빨 사이에 무엇이 끼인듯이 짜증스런 침전물이 있다. 이럴때 문화는 상쾌한 입가심이 되고 심기일전을 시켜준다. 또 빌딩속의 일상은 곧잘 배알이 불편하다. 속이 끊는 일이 많다. 문화는 이런 체증을 가라앉힌다.

문화예술은 그 효능의 요목이 자물쇠 두꺼운 금고속의 기밀문서에 적혀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분수대광장에서 신문지를 깔고 앉아 바라보는 가설무대에 있다. 그리고 문화예술에 대한 접근방법은 무슨 장거리 여행을 떠나듯이 정장을 하고 가방을 챙겨들고 할 것 없다. 밥먹고나서 셔츠바람으로 산보하듯 나서면 된다. 이것이 분수대광장의 작은 축제가 가르치는 작지않은 교훈이다.

예술이란 공원의 벤치같은 것이다. 거기 안정이 있고 휴식이 있다. 현대인의 도시생활은 부서진 의자에 앉아있는 것이다.<언제 부서진 의자가 내게 안식을 주려느뇨> 하고 TS엘리어트의 시구는 탄식한다. 도심속의 소공원에서의 소공연이 안식을 줄 것이다.

공해에 찌든 빌딩들의 숲 사이,고개를 치켜보아야 손바닥만한 하늘은 노상 뿌옇고 가슴답답해 심호흡을 하면 먹물이 삼켜진다. 이럴때 와락 그리워지는 푸르름,신록의 나무 잎사귀 하나만한 푸르름이라도 탁한 마음속에 칠하고 싶다. 예술과의 대좌는 그런 채색이다.

현대예술은 대좌에서 내려오고 새끼줄 친 울타리가 없어져 간다. 예술과 생활은 경계와 거리를 잃어가고 있다. 예술과 생활은 경계와 거리를 잃어가고 있다. 예술과 생활이 친교하자면 예술은 제자리에 있고 생활이 찾아 다니기만 할 것이 아니라 예술이 생활이 찾아 다니기만 할 것이 아니라 예술이 생활 가까이로 옮겨다니기도 해야한다.

바쁜 직장인들의 자투리 시간에 빽빽한 도심의 자투리 공간에서 만나는 자투리 문화라 하여 그것이 위문공연 같은 것에 그쳐서는 안된다. 문화의 생활화가 곧 대중문화화인 것은 아니다. 생활이 문화를 기웃거릴때 문화는 그 할말을 다할 좋은 기회다. 춤과 노래 말고도 시나 그림,단막극 등을 내세울 수 있고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할수도 있을 것이다.

서울이라면 비단 한두군데의 소광장 뿐이겠는가. 웬만한 소공원이나 점심시간 한나절이나 해긴 여름 퇴근시간 무렵에 작은 축제를 열수 있다. 온 서울이 문화의 한마당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각종 예술은 공연장이 없다고들 푸념해왔다. 빈터가 얼마든지 많다. 모든 빈터가 공연장이다.

서울만일 것도 없다. 전국의 대도시마다 시립 공영단체들을 몇개씩 가지고 있다. 이들이 시민회관 속에 갇혀있기만 해서는 안된다. 길거리로 나와야 한다.

서울이거나 지방도시거나 간에 또 시립단체에만 기대할 일도 아니다. 민간 예술단체들이 자발적으로 작은 축제운동을 확산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분수대광장의 성과가 격려해준다. 이런 축제는 문화의 기초단위요,문화운동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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