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군사쿠데타는 당시 모든 정치인들에게 있어서는 밝은 대낮의 날벼락이나 다름 없었다.그러나 구 정치인들은 쿠데타 세력이 자신들을 무능하고 부패한 「구악」으로 낙인찍고 일침을 외치자 긴장했다. 특히 쿠데타세력의 핵심주역인 한 인사가 기자들에게 『구 정치인들은 병균이요,박테리아나 다름 없다. 몸을 건강하게 하려면 병균을 퇴치해야 하듯 정치부패를 없애려면 구악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는데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악 제거작업은 이듬해 봄 최고회의가 느닷없이 정치정화법을 만들어 구 정치인 등 4천4백여명을 대상으로 삼아 억지 심사끝에 일부는 해금하고 대다수는 활동을 금지시킴으로써 병균을 격리시켰다. 하지만 그뒤 쿠데타세력이 만든 공화당이 구 자유·민주당 인사들을 끌어들임으로써 고약하고 몹쓸 구악병균과 손을 잡은 것은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하겠다.
정치의 중심은 정치인이다. 정계개편은 바로 사람을 바꾸는 것이 주종이기 때문에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단순히 제도나 정치의 외양만을 변형시켜서는 무의미하다. 참다운 개편은 사람의 교체로 정당의 체질을 개선하고 정치의 질을 높여야만 하는 것이다.
건국이래 우리나라에서는 숱한 정계개편이 시도됐으나 성공한 예가 거의 없다. 정계개편은 대체로 두가지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힘에 의한 인위적 개편이고 또 하나는 국민의 뜻과 시대적 요청에 따라 순리적으로 단행하는 것이다. 인위적 개편의 경우 5·16후 구 정치인들을 정화법으로 발을 묶은 것과 12·12와 5·18로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가 80년 5·16때를 흉내내어 정치쇄신법을 만들어 8백50여명의 민간 정치인들을 규제,심사하여 힘으로 정치판의 물갈이를 시도했다가 완전 실패와 함께 정치만 정체·후퇴시킨게 대표적인 사례다.
국민의 뜻과 시대적 요청에 따라 추진,그런대로 성공한 케이스는 1954년 사사오입 개헌 등 자유당의 독주에 맞서 범야세력이 뭉쳐 민주당을 출범시킨 것과 박정희정권을 저지하기 위해 67년 야권이 단일 야당으로 신민당을 창당한 것 등을 꼽을 수 있다. 6공에 들어서 3당 합당으로 새출발한 오늘의 거여 민자당의 경우 물론 성공작이라고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최근 정계개편론이 심상치 않게 꼬리를 물고 있다. 개편론은 두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집권당인 민자당의 얼굴바꿈을 통해 체질을 개선하는 문제다. 3당 통합후 3년반이 가깝도록 동화는 커녕 3계파가 불가근불가원의 어정쩡한 정립관계로 경계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데다 상당수 인사가 과거의 정치적 행적과 부정축재 의혹으로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는 만큼 과감한 자가 수술을 하고 물갈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민자당과 민주당 모두 지금과 같은 이질적 요소들의 산술적 결합상태로는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는 정당구실을 할 수 없는 만큼 민자당내의 민주계와 민주당의 개혁파 인사들이 주축이 되고 각계의 개혁적 인사를 규합하여 개혁적인 신당위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현재로서는 민자당의 자체 정비와 수술이 가장 시급한 당면과제이다. 김영삼대통령이 회견에서 『정계개편은 고려할 시기도 문제도 아니며 15대 선거공천에서 깨끗하고 개혁적인 인물을 대거 발탁할 것』이라고 말하고 또 김덕룡 정무1장관이 『개편은 인위적이거나 공작적이어서는 안되며 국회 해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15대 공천서 변화를 시도할 것』이라고 한 대목은 논리적으로 옳다. 하지만 그렇다고 민자당을 현재 상태로 방치한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민들이 볼때 오늘날 민자당은 집권당으로 제구실을 못하는,무기력 무위의 모습이다. 누구보다도 개혁의 방향과 복안을 내고 연중국회를 열어 입법활동으로 앞장서 개혁을 이끌고 지원해야함에도 김 대통령의 개혁조치를 관망만하고 그저 뒤따라가는 안이한 자세는 집권당이 취할 태도가 분명 아니다.
따라서 민자당은 즉각 과감한 자체 수술에 나서야 한다. 첫째 불법부정한 축재 등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고 있는 인사는 일체의 당직에서 물러나도록 해야하고 지난날 역사적 정치적 행적으로 책임을 져야할 인사는 당을 떠나도록 해야 한다. 그와 함께 각계의 유능한 신진세력을 대거 유입하여 당체질을 개선하는 것 역시 시급한 과제로서 하루빨리 체질개선으로 개혁을 주도할 태세를 확립해야만 한다. 이같은 뼈를 깎는 자체 정비없이 대통령의 개혁작업의 구경꾼 박수꾼으로 지속하는한 당발전은 아득하기만 할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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