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난 학력향상… 학교마다 부작용/시간도 새벽부터 한밤까지 멋대로/일부선 별도 수업료 징수 「말썽」까지고교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도입된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이 입시위주로 파행운영돼 갖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지만 존폐여부를 놓고 당사자간의 이해가 엇갈려 딜레마에 빠져 있다.
보충수업은 지난 74년 고교평준화정책 실시이후 학생들간의 실력차가 커지고 과열과외현상이 나타남에 따라 이를 보완,학습부진 학생들의 학습결손을 보충한다는 취지로 출발했다. 또 자율학습은 80년 과외금지조치이후 학생들의 학습기회와 장소를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강화됐다.
그러나 대입시 준비교육만이 중요시되는 교육풍토하에서 원래의 취지와는 달리 우수학생만을 중심으로 운영되거나 학생들의 자유의사를 무시하고 강제적으로 실시되는 등 오래전부터 편법적으로 운영돼왔다. 또 학생들의 전인적인 성장을 저해하고 교사들의 근무부담을 가중시키는 등의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지적돼왔다.
때문에 폐지여론이 높아 보충수업은 80년 7·30 교육개혁조치로 일단 폐지됐으나 이해당사자간의 의견대립과 과열과외 해소 등의 명분으로 84년 부활,86년 축소조정,87년 전면폐지,88년 부활 등 여러차례 존폐를 거듭해왔다. 지금의 보충수업은 87년 전면폐지때 경과조치로 고3에만 남겨두었던 것을 88년 5월 전학년으로 확대 실시한 것이다.
또 자율학습은 폐지여론에 따라 지난달 31일 시·도교육감들에 의해 오는 2학기부터 고 1·2학년에 한해 폐지키로 했으나 입시를 눈앞에 두고 있는 3학년의 경우 폐지여부가 확실치 않다.
현재도 한국교총·전교조 등 교육관련 단체들이 보충수업 폐지를 주장하고 있지만 교사와 학부모,학생 등 당사자간의 이해관계가 다르고 도시와 농촌간의 입장이 확연히 달라 존폐여부가 불투명하다.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의 파행적인 운영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교육당국은 보충수업을 희망학생,희망과목에 한해 실시하고,과목별·학력별 반편성을 권장하며 정규교과시간으로 연장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수업시간은 1주에 5시간(3학년 10시간)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자율학습은 희망학생만을 대상으로 하루 4시간에 한해 실시하며 이른 새벽·밤늦은 학습을 지양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지침을 그대로 지키는 학교는 드물다.
우선 대부분의 학교가 보충수업을 반강제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희망학생에 한해 희망교과를 편성한다는 것도 말뿐으로 전교생을 대상으로 영어·수학·국어 등 입시 주요과목을 가르치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한국교총이 최근 전국 98개 고교의 교사 학생 각 5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보충수업 및 자율학습에 관한 조사연구」에 의하면 보충수업 참여여부를 학생들의 자유의사에 맡긴다고 응답한 경우는 21.1%에 불과했다고 학교당국 결정 66.6%,교사권유 10.2%,학부모 권유 1.2%였다.
보충수업과목은 국어가 77.5%로 가장 많고 수학·영어 각 76.2%,과학계열 49.7%,사회계열 35.8%,제2외국어 35.8%로 나타났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획일적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과목별로 학생들의 학력에 따라 반을 편성,학습부진과 결손학습을 보충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 보충수업의 가장 큰 문제다. 한국교총의 조사에서는 「학생의 능력에 따라 반편성을 한다」는 경우는 3.4%에 불과한 반면 94.8%가 「학급단위로 편성한다」고 응답했다.
오히려 명문대에 많은 합격자를 내기 위해 성적이 부진한 학생을 제외하고 우수학생만 골라 편법적으로 우열반을 운영하기 일쑤이다.
지난해 1,2,3학년 전원을 대상으로 보충수업을 실시한 서울 K고의 경우 3학년 학생중 전교석차 1백등안에 드는 학생만을 대상으로 이른 아침 정규수업 시작전과 하오 보충수업시간이 끝난후에 「특강」이라는 이름으로 국어,영어,수학을 가르치는 사실상의 우열반을 운영했다.
또 서울 S여고는 올해 3학년 상위권 학생들을 대상으로 보충수업과는 별도로 대학별 고사를 대비한 특별반을 운영하다 상위권 학생 대부분이 선호하고 있는 E여대가 대학별 고사를 보지 않기로 방침을 정하자 2개월만에 해체했다.
취지대로라면 복습이나 예습형태로 진행되어야 할 보충수업시간에 정규교과진도를 나가는 경우까지 있다. 또 다른 S여고에서 국어를 담당하고 있는 이모교사는 『3학년 2학기때 총정리를 하기 위해서는 여름방학전에 교과서 진도를 마쳐야 하며 부교재 사용도 금지돼있어 보충수업시간에 수업진도를 나갈 수 밖에 없다』며 『수학,영어 등 다른 입시주요과목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같은 현상은 인문계 고교에서는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일이라고 이 교사는 전했다.
보충수업시간을 연장하거나 교사,학부모들과의 협의도 없이 보충수업을 실시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최근 광주 K고,D여고는 학생 1인당 월 40시간을 초과해서는 안되는 보충수업시간을 3학년의 경우 월 60시간으로 연장,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경기도내의 K고는 학교별로 운영협의회를 구성해 보충수업과 자율학습내용을 결정하도록 돼있는데도 이를 무시,일괄적으로 실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율학습도 타율학습이 된지 오래며 시간을 연장해 운영하기 일쑤이다. 명문대 합격자를 많이 내는 사립고교들의 경우 수업시간 전뿐만 아니라 하오 10∼11시까지 자율학습을 시켜 하루 4시간 초과가 예사다.
수업 자체만이 아니라 보충수업과 자율학습 비리를 교사수당 이외의 다른 용도로 전용하거나,찬조금을 징수하는 등의 잡음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서울 강남지역의 모고교에서는 지난해말 연말 정산과정에서 교장이 보충,자율학습비중 수백만원을 난방용 기름을 사는데 전용한 사실이 밝혀져 지난 2월 원로교사들이 당국에 진정하기까지 했다.
또 보충수업비로 교장의 운전사 수당을 지급하고 차량 연료비를 대거나 잡비로 쓰는 등의 편법은 학교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현장의 교사들은 말했다.
올들어서는 교육당국의 지시와 사정한파 영향으로 예전처럼 심하게 지침을 어기는 학교가 줄어들었지만 수업시간을 지키는 정도에 불과할뿐 편법운영은 마찬가지라는 것이 교육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이같은 파행운영과 부작용 때문에 오래전부터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폐지하자는 여론이 계속돼온 것이다.
주로 한국교총,전교조 등 교원단체들이 주장하고 있는 폐지론은 현재의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이 대학진학률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돼 학교간의 과당경쟁을 유발하고 학생에게 학습부담을,교사에게 근무부담을 가중시켜 학교교육을 왜곡시키고 있을뿐 교육적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현장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많은 교사들은 보충수업에 반대하고 있다. 현대사회연구소가 지난해 12월 서울시내 인문계 고교 교사 6백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교사들의 70.8%가 반대의견을 보였다.
반대이유는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 23.3%,「학생의 전인적 발달저해」가 19.0%,「강제적 실시」가 19.3%,「교사근무 부담가중」이 16.0%였다.
J여고 장모교사(33)는 『교사들은 보충수업을 달가워하지 않지만 과외극성을 막으려는 교육부의 방침과 보충수업이 없으면 불안감을 느끼는 학부모들의 요구가 맞물려 울며 겨자먹기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입시에 찌든 학생들도 마찬가지여서 「같은 선생님에게 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배우기 때문에 지겹다」 「대학 가기위해서 으레 하는 것으로 여길뿐 효과는 별로 없다」 「공부 못하는 학생은 스트레스만 쌓이고 잘하는 학생은 시간낭비라 여긴다」는 반응을 나타내곤 한다.
그러나 입시성적을 고려해야 하는 학교장이나 학부모의 입장은 다르다. 이들은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이 고교교육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폐지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이 더 크다고 주장한다.
우선 보충수업을 하지 않으면 수업이 끝난후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부유층은 고액과외로 치달을 것이고 서민층이나 학교이외의 입시교육기관이 없는 농촌지역 학생들은 최소한의 입시준비 기회마저 박탈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경기도 연천종고 서헌무교감은 『대도시에는 학원도 많고 과외기회도 많지만 농촌지역의 경우는 그런 여건이 마련돼있지 않아 보충수업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교사의 입장에서는 보충수업을 폐지하는 것이 편안해 찬성하고 싶지만 지역사회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고 입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 때문에도 폐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보충수업 폐지로 하오 4시께면 학교문을 나서는 학생들의 생활지도가 어렵다는 점,수업시간이 부족한 영어·수학·국어 등의 과목을 위해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현실적으로 보충수업 폐지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교총이 지난 3월 올 2학기부터 보충수업,자율학습 거부운동을 벌이기로 한 이후에도 인천,광주 등 일부지역에서는 보충수업이 오히려 강화되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보충수업 폐지론자든 찬성론자든 입시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현재의 보충수업 방식을 지양하고 순수한 의미의 보충수업,즉 수업내용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주는 수업으로,자율학습도 원래의 의미로 돌아가야 한다는데는 의견이 같다.
그러나 교육 전문가들은 고교교육이 입시위주로 계속되는 한 이상적인 형태의 보충수업,자율학습이 자리를 잡기는 힘들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 일부에서는 새 대입시제도하에서 보충수업도 새롭게 바뀌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갖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홍대부고 어떻게 하고 있나/희망학생들만 모아 주 10시간씩 지도/자율학습위해 2개 도서실 특별운영도
서울 성북구 성북동 150 홍익대 사대부고는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을 입시위주의 파행적 형태로 하지 않고 학생들 자유의사에 따라 실시하는 모범학교로 꼽힌다.
이 학교는 대부분의 학교들이 예체능·교련시간 등을 자습으로 대체하거나 아예 보충수업을 하는 등 과열이 되고 강제·편법적으로 운영하는 것과 달리 시교육청에서 정한 1·2학년 주 5시간,3학년 주 10시간의 범위내에서 1백% 학생들 자유의사에 맡겨 희망자만 보충수업·자율학습을 하도록 한다.
「홍익인간」이라는 재단설립 이념대로 고교시절 학생들을 학교에만 잡아놓고 학업성적만 강요하기 보다 자유로운 사고와 활동이 있어야 올바른 가치관 형성이나 판단·사고능력 함양이 가능하다는 취지를 살리고 있는 것.
이에 따라 보충수업이나 자율학습을 하지 않는 학생들은 하오 4시시께 하교한뒤 대부분 독서실·학원을 다니지만 이중에는 일찌감치 진로를 결정,자동차중장비학원 등에 기술을 배우러 다니는 학생들도 있다.
자율학습은 2개 도서실에서 하오 6∼10시까지 하는데 1·2학년은 80·50명이 하고 있고 3학년은 70명이 참여하지만 1학군내 학교중 성적도 우수한 편이며 학생들의 교외사고도 타학교에 비해 적은 편이다.
자율학습·보충수업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교육에 성의가 부족하거나 학생들을 방임하는 것은 아니다.
올해부터 수학능력시험에 대비해 1주일에 2시간씩 독서시간을 주고 학생들이 독서위원회에서 문학·예술·과학 등 여러분야에 걸쳐 선정한 필독도서를 읽은뒤 「독서노트」에 독후감 등을 써내게 하고 있다.
또 「나의 문집」이라는 숙제를 내 신문사설이나 칼럼·기사중 1개를 골라 읽고 매주 원고지 5∼6매 분량에 자기 주장이나 느낀 점을 적어내게 해 입시위주 교육풍토에서 소홀하기 쉬운 발표력 작문력 신장을 돕고 있다.
이같은 학교의 방침에 대해 취지를 오해한 일부 학부모들이 『공부를 열심히 시키지 않는다』고 불평해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학교측은 최대한 설득해 밀고 나간다고 말하고 있다.
방효일교장(65)은 『학부모들이 학교에 늦게까지 있기만 하면 학생들이 공부한다고 안심하는 것은 착각』이라며 『오히려 학생들이 그 시간에 자유의사에 따라 탈선하지 않는 범위에서 활동해야 고교시절 가장 중요한 올바른 인격형성이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설희관차장·김현수·장인철·여동근·남경욱·이진동·현상엽기자(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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