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사나이」 과욕이 빚은 “몰락”/3당 합당후 YS와 사사건건 대립/「노심」 잘못 읽고 대권도전 야심 “착각”박태준 전 포철 회장이 현재 신병치료를 위해 지난 3월부터 일본에 장기체류중이다. 지난해 정치적 좌절로 인해 화병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가슴과 배 사이에 큰 혹이 발견돼 일본의 한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고 있는데 「위험한 병」일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박씨는 포철을 떠나기에 앞서 올해초 일본에서 치질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종양은 이 수술을 위한 검사과정에서 발견됐다. 그는 지난 3월10일 자신에 대한 수사설이 구체화되고 있을 때 부인과 함께 일본으로 가 머물고 있다.
박씨는 일본에서 외부와의 접촉을 일체 사양한채 신병치료에만 주력하고 있다.
그는 지금 설상가상으로 자신의 비운을 병상에서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검찰의 사법처리 대상이 되거나 아니면 기약없이 외국을 떠돌아야 하는 사실상의 「정치적 망명자」가 될 운명에 놓이게 됐다.
정치인으로 변신,한때 대권을 꿈꾸기까지 했던 세계적 철강인의 철저한 몰락이다.
그는 지난 68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포항건설에 착수,지난해 광양제철소 완공에 이르기까지 25년동안 「포철신화」를 창출해낸 탁월한 기업인이었다.
그는 5·16직후 국가재건 최고회의 박정희 의장비서실장과 5공시절 여당 전국구 의원을 역임하는 등 「외도」를 한 적도 있으나 이때까지만해도 그는 정치에 소극적이었다. 이 시기의 「정치인 박태준」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던 박씨는 지난 89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간곡한 권유로 민정당 대표위원에 취임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정치적 격랑에 휩쓸리게 된다.
3당 합당후 박씨는 사사건건 YS의 반대편에 섰다. 그는 90년 가을 이른바 내각제 각서파동속에서 YS가 마산행을 결행했을 때 YS의 행태를 「패도정치」라고 비난했다. 또 『YS가 대통령이 되면 경제가 망한다』는 자질론을 내세우며 반YS 민정계 보스로 자리를 잡아갔다.
3·4·5·6공을 거치면서 권력의 「온실」에서만 머물러온 박씨와 40여년간 온갖 풍상속에서 단련되어온 대중정치인 YS는 처음부터 잘 맞지가 않았다.
그는 최고위원으로서 민정계 위탁관리자의 위치였지만 지난해 14대 총선을 계기로 그 도를 넘어 대권 도전의사를 구체화했다. 포철을 기반으로 한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선거자금을 지원함으로써 당내 「TJ계」 형성을 시도한 것이다.
이 시기에는 민정계는 물론 일부 민주계 인사들까지도 규모의 차이는 있으나 「도움」을 받았다고 시인하고 있다.
그러나 박씨의 이같은 노력은 그를 정치에 끌어들인 노 전 대통령에 의해 좌절되고 만다. 노 전 대통령은 직간접적인 압력을 넣어 민자당 후보경선에 나선 그를 주저앉혔다. 박씨의 경선출마에 대한 민주계의 결사적인 반대가 주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처럼 후보구도와 관련한 「노심」이 명확해졌는데도 박씨는 YS의 손을 들어주지 않고 이종찬의원 진영에 가담했다. 이때부터 그는 급전직하,몰락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그러던중에 지난해 9월18일 노 전 대통령이 한마디 사전상의도 없이 전격적으로 민자당을 탈당했다. 박씨는 당내 경선출마 좌절에 이어 또다시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이다.
그는 탈당의 배수진을 치고 YS와 당내 입지확보를 위한 마지막 담판을 시도했다. 내각제 개헌을 대선공약으로 내걸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YS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YS는 광양에 칩거중인 박씨를 찾아가 탈당을 만류했으나 그는 『더이상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정계은퇴」 의사를 표명한뒤 탈당을 강행했다.
그러나 실제로 박씨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여전히 당내 민정계 의원들에게 탈당신호를 보내며 반YS 신당 합류를 부추겼다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다.
여기에 대선 하루전인 지난해 12월17일 발생한 민자당의 박씨 사신공개와 이에 대한 박씨의 의원직 사퇴는 그와 YS 사이에 도저히 메울 수 없는 감정의 골을 파게 된다. 선거기간중 국민당은 『박씨가 곧 국민당에 입당한다』며 공세를 펴자 민자당은 박씨가 YS에게 보낸 「격려서신」을 공개,이에 맞섰다. 홍콩에 머물고 있던 박씨는 민자당을 공개 비난하며 의원직을 내던짐으로써 YS진영에 뜻밖의 상처를 입혔다.
박씨측은 대선후 『의원직 사퇴는 이미 예정된 것으로 당시 사신공개로 시기가 하루 앞당겨진 것일뿐』이라고 해명하며 당선축하 화한까지 보냈으나 YS진영은 배신감을 삭이지 못했다.
결국 박씨는 30년간 쌓아올린 기업인으로서의 명성을 하루 아침에 무너뜨리고 말았다.
어쩌면 정계에 발을 디딘게 불행의 씨앗이었는지도 모른다.<유성식기자>유성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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