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8일과 29일 서울 신촌·종로 일대에서 벌어진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의 시위행태는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전국 1백87개 대학에서 모인 5만여명의 학생들은 「5·18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면서 거리로 뛰쳐나왔는데,문민시대의 새로운 시위문화를 기대했던 시민들은 과거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데모양상에 참을 수 없는 염증을 느꼈다.29일 학생들은 고대에서 「한총련」 출범식을 갖고 집회허가에 따라 대학로까지 평화행진을 했으나,하오 4시쯤 대학로 집회가 끝나자 종로일대로 물밀듯 진출하면서 경찰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경찰과 학생들의 충돌은 삽시간에 쇠파이프·각목·돌멩이·최루탄을 몰고 왔다. 그들은 오래 싸워온 숙적처럼 익숙하게 공방전을 벌였다. 왕복 10차선 도로가 싸움터로 변해 서울 중심가의 교통이 일시에 마비됐고,곳곳에서 시민들이 최루탄 가스를 마시며 진저리를 쳤다.
시민들은 눈물과 재채기를 쏟아내며 『아휴 지겨워,아휴 지겨워』를 연발했다. 차가 막혀 옴짝달싹할 수 없는 거리에 갇힌 사람들,집에서 TV나 신문을 보던 사람들도 모두 『지겨워』를 외쳤다. 도대체 우리나라의 학생과 경찰은 언제까지 저런식으로 맞설 작정인가.
경찰과 학생들은 과격시위의 책임을 서로 전가하고 있다. 경찰은 대학로 집회이후의 가두행진은 불법 집회이고 교통에 막대한 지장을 주므로 막을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고,「한총련」은 경찰의 과잉진압이 과격시위를 불렀다고 주장한다. 이날 최루탄 파편과 경찰봉에 맞아 학생 수십명이 부상했고,학생들이 휘두른 쇠파이프와 돌에 맞아 경찰 수십명이 부상했다. 최루탄 5천5백여발이 터졌고,학생들이 빼앗아 불태운 경찰의 시위진압 장비가 2백30여점에 이르렀다. 학생 5만여명과 경찰 2만여명이 벌인 공방전은 과거의 데모현장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왜 이래야 하는가. 4·19이후 30여년간 학생들이 역대 정권과 싸워 오늘의 민주화에 밑거름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학생들은 이 정부와도 그런 식으로 싸울 생각인가. 새정부의 통일원장관이 통일에 대한 대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너무 진보적」이라는 비난까지 받고 있는 마당에 북한 대학생들과 전화접촉을 하여 도대체 무슨 의미있는 진전을 이루겠다는 것인가. 세계와 북한을 보면서 아직도 환상이 남아있단 말인가… 국민은 학생들을 향해 이렇게 묻고 있다.
새정부가 출범하여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속에 개혁을 서두르고,학원의 운동권도 전대협시대를 마감했을 때 우리는 학생운동의 새방향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그런데 「한총련」은 이름표만 새로 붙였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특히 과거에 폭력적인 권위주의 정부와 맞서 싸우면서 운동권이 자기도 모르게 닮아갔던 권위주의와 폭력성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든다. 오히려 정부가 더 민주화하고 있다면 학생운동이 어떻게 비판세력으로 설 땅을 찾겠는가. 「한총련」은 분명한 입장을 정리해 밝혀야 한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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