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티에」라면 파리의 전통있는 명포이름이다. 1847년에 보석장식상으로 창업한후 주로 왕족이나 귀족들의 장식품을 주문 생산하면서 브랜드의 명성을 쌓아왔다. 1백년도 지난뒤인 1968년부터는 라이터,만년필,모로코 가죽제품 등을 새로 내놓기 시작했으나 아직도 서민들로서는 쇼윈도나 보고 지나칠 수 밖에 없는 최고급 상점이다.이 노포에 젊은 바람을 일으킨 것은 1981년 40세 전후의 나이로 사장에 취임한 알랭 페랭이었다. 그는 회사의 오랜역사를 현대문화와 연결시킬 생각을 했다. 『기업만이 예술가의 창조를 도우는 후원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이 1984년 10월 당시 프랑스 문화부장관이던 자크 랑의 참석아래 개장한 것이 「예술가촌」이다.
파리에서 서남쪽으로 약 20㎞,베르사유에서 과히 멀지 않은 주이 앙 조사스마을 인근에 큰 공원이 있다. 옛날에 「몽셀의 영지」라 불리던 귀족의 소유지로 넓이가 37에이커(약 4만5천평)나 되는 숲이다. 이 전체가 카르티에의 예술가촌을 이룬다. 숲에는 2백년생 히말라야 삼나무 등 고목들이 울창하고 각종 희귀목이 식물원 같다. 수림 사이 사이에는 세자르의 「에펠에게」,아르망의 「장기주차」 등 많은 조각작품들이 세워져 야외전시장 구실을 한다. 공원 입구쪽의 건물이 화가들을 위한 아파트와 아틀리에다. 현대미술관계 책들을 파는 서점과 카페가 딸려 있다. 상설 미술관을 겸한 전시실 건물을 숲가에 따로 지었다. 옛 성관이 남아 있어 식당과 회의장소로 쓰인다.
페랭 사장이 이 예술가촌을 만든 것은 조각가 세자르가 『예술가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단지 돈만이 아니라 오히려 제작과 발표의 장소다』라고 말한데 자극을 받아서였다. 그는 유망한 예술가들을 발굴해 개척적 경향의 미술을 적극 지원하기로 마음 먹었다. 우선 매년 프랑스내뿐 아니라 세계 여러나라서 25명 가량의 미술가들을 이 예술가촌이 초청해서 대개 3개월 정도 숙식과 작업장을 제공한다. 지금까지 1백50여명의 미술가들이 이곳을 거쳐 나갔다. 예술가촌은 창작의 장소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화가들의 작품을 직접 매입하거나 전시실에서 전람회를 열어 팔아주기도 한다. 앉아서 고객을 기다리기만하지 않고 나서서 이동전시회도 마련한다. 세계의 각 미술관들에게는 카달로그를 보내 작가들 선전도 해준다. 현재 이 예술가촌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은 6백점이 넘는다. 예술가촌이 지원한 작가를 중심으로 1960년대 이후의 작가 것을 개촌이래 모은 것이다. 소장 작품들은 전시실에서 3개월마다 번갈아 소개된다.
카르티에의 이 예술가촌은 전혀 새로운 형태의 기업에 의한 메세나(문예지원)운동이다. 프랑스의 메세나 활동에는 여러은행 등 유수한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이 카르티에사의 작년 한해 지출이 4천2백만프랑(약 60억원)으로 단연 최고를 기록했다.
임간 아닌 도심속에서 예술가촌이 아닌 예술혼을 찾자면 일본에서의 예를 들 수 있다.
도쿄(동경) 시부야(삽곡)의 도큐(동급)백화점에 인접한 「BUNKAMURA」(문화촌). 도큐전철과 도큐백화점이 반씩 출자해 땅값 비싼 4천여평의 부지에 총 2백10억엔(약 1천5백억원)을 들여 4년전인 1989년에 개장했다. 2천1백50석짜리와 7백50석짜리의 두공연장 외에 전시실,소규모 영사실,녹음스튜디오,양서점 등이 갖추어진 복잡문화지대다. 자체 기획의 공연도 하고 특정 교향악단이나 극단과 전속계약을 맺어 운영하기도 한다. 백화점의 매장을 늘리는 대신 여기에 문화촌을 세운 것은 도시의 잡답과 훤소속에 문화의 의자를 놓아 공원처럼 시민을 안식시키자는 뜻이었다. 이 문화촌에 대한 기업측의 지원예산은 3년동안에 20억엔 이상을 예상하고 있다. 기업이 만든 시설이면서 특이한 것은 이름이 그냥 영자로 「BUNKAMURA」지 「도큐」라는 기업명이 관사로 붙어있지 않다는 점이다. 문화에 기업을 끼워 팔지 않고 문화에 기업이 생색내지 않겠다는 새로운 문화접근 의지의 표현이다.
우리나라에는 카르티에의 예술가촌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도큐의 문화촌만한 복잡문화시설을 기업이 가진 곳이 없다. 기껏 삼성의 호암아트홀(9백50석)이나 두산에서 지난 5월 개장한 연강홀(5백석),인켈이 지난 2월 제2관의 문을 연 2개의 소규모 아트홀(2백20석과 1백50석) 등 단위 공연장 정도다.
도심이건 교외건 우리나라에도 문화촌 내지 예술촌이라 이름부를만한 문화단지나 문화타운이 있었으면 좋겠다. 대도시에는 각종 음식점들이 줄줄이 늘어선 식당가도 많고 먹자빌딩도 있지만 음식을 골라 먹듯 문화를 입맛대로 골라 섭취할 문화가나 문화빌딩이 없다.
특히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의 예술가촌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친다. 큰 기업들은 경관 좋은 곳에 그저 콘도만 자꾸 세울 것이 아니라 예술의 집을 짓고 예술가의 집을 지어 예술의 마을을 만들 일이다.
기업가는 새로운 것,독창적인 것을 끊임없이 추구한다. 자연을 개조하고 생활양식을 바꾸려는 충동을 늘 느낀다. 이것은 바로 예술정신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업가는 예술가다. 기업이 예술곁에 있어야 하는 것은 한가지 소명이다.<본사 상임고문·논설위원>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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