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탄생 100돌 기념… 기념행사 계획/3천여 상점·식당마다 인파 북적『호남성 상담현 소산향 모택동의 고향은 이제 더이상 「붉은」메카가 아니며 국내외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관광지일 뿐이다』
중국 영자지 차이나 데일리가 29일자 여행란에 게재한 소산향에 관한 르포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문화대혁명 초기인 66년 10월 대학생 신분으로 홍위병들과 함께 소산향에 「순례」를 다녀왔던 경험을 지닌 기자는 27년만에 소산향을 다시 찾으면서 가슴속에 풀리지 않은채 맺혀있던 「골디우스의 매듭」을 이번 기회에 끊고 싶다고 적고 있다.
이 기자는 27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모택동의 고향에서 변하지 않은 것은 모택동의 생가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조그만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성도 장사시로 철로가 뚫렸으며 모택동의 생가 주변에는 단장한 주택들이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모택동의 생가 바로 건너편에는 「모가판점」이라는 화려한 식당이 들어섰다.
이 식당의 여주인 탕루이런은 이 마을에서 모택동 다음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이 여성이 이처럼 유명해진데는 1959년 6월26일 모택동이 고향을 떠난지 32년만에 귀향한 것이 계기가 됐다. 모택동이 마을 주민인 탕여인과 이야기하는 장면이 사진으로 찍혔는데 이는 「모의 32년만의 금의환양」을 상징하는 사진이 되었던 것이다. 이 사진은 당연히 탕여인 집안의 가보가 되었고 이제는 호기심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이 식당의 간판이 된 것이다.
소산향에는 「모가판점」외에도 3천여개의 사영 식당 혹은 상점들이 있다. 상점들은 모의 저작,기념배지,기타 기념품 등을 판매하는 기념품 상점들이 대부분이다.
올해는 모택동의 탄생 1백주년이 되는 해. 그의 탄생일인 올 12월26일에는 소산향 중앙광장에서 12.26m 높이의 대형 청동상 제막식이 열리는 등 각종 기념행사가 예정돼 있다.
모에 대해 종교적 열정에서가 아니라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구하려는 분위기 가운데서도 소산향 사람들은 모택동이 20세기 중국의 위인이며 또 자신들이 모의 고향사람임을 여전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차이나 데일리의 기자는 적고 있다.
이 기자는 그러나 자신의 가슴속에 맺혀있는 「골디우스 매듭」을 끊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끝내 언급하지 않았다.<북경=유동희특파원>북경=유동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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