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민투·민민투·자민투는 85년부터 87년 봄까지 대학가를 주도했던 극렬학생운동조직들이다. 삼민투가 먼저 생겼다. 얼마 후 민민투와 자민투로 양분됐었다. 이제는 대학가에서마저 두 조직의 이름을 입에 담는 학생들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됐다.편향된 운동권 학생조직을 새삼 기억하게 되는 것은 그들이 주장했던 「6·25북침설」 때문이다. 이들 학생조직이 한창 가세를 올릴때인 86년에 나온 한 지하유인물은 『6·25는 미제가 남한의 괴뢰정권을 앞세우고 저지른 북침』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폈었다. 「민족해방전쟁론」까지도 등장해 섬뜩하기마저 하던 때였다.
6·25는 「북한에 의한 남침」이 국제학계에서 엄연한 정설로 굳어졌고 최근에 와서는 중국과 소련의 비밀문서 공개로 확인된 바도 있다. 김일성도 간접시인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하물며 우리 대학생들의 상당수가 편향된 운동권도 아니면서 6·25를 아직까지도 「조국통일을 위한 민족해방전쟁」 「남한의 북침」이라고 믿고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국논단과 한국갤럽조사연구소가 함께 실시한 「6·25관련 대학생의 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미·소 초강대국에 의한 대리전쟁」=56.7%,「북한의 불법남침에 의한 동족상잔」=30%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해방전쟁론」과 「북침설」의 왜곡된 의식을 갖고 있는 학생들이 9.3%나 됐다는 것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김일성보다도 이승만 초대대통령에 대해 더욱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는 대학생들의 의식의 단면이다. 이승만대통령을 「친미사대주의자」=53.3%,「반민주적 독재자」=18.2%,「영구분단의 원흉」=17.6%로 부정적 평가를 하고 있는 대학생들이 압도적이었으며 「독립투사이며 건국의 아버지」라는 견해는 1.3%의 극소에 그쳤다.
김일성에 대한 평가는 「후세사가에 맡겨야 한다」=43.1%로 유보적인 응답자가 가장 많았으며 「동족상잔의 주범」=22.6%,「철저한 공산주의자」=18.3%,「민족의 지도자」=6.3%였다.
이승만 초대대통령은 물론 집권 중반이후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장기집권을 획책하면서 독재정치를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50년대의 동서양극화의 국제정치 현실속에서 친미적이었던 것 또한 부인할 수 없지만,그를 사대주의자라거나 「조국분단의 원흉」으로 악평한다는 것은 올바른 시각이라 할 수 없다. 특히 일제가 물러간 직후의 혼란한 정치상황 속에서 「남한만의 단독정부」라도 탄생시키지 않았다면,자유민주주의를 체제로 하는 대한민국은 건국도 못해 본채 한반도는 공산화됐을지도 모른다. 이승만 초대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집권후보다는 건국에 더 많은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 것이 아닐는지.
어쨌든 그것이야말로 사가들의 몫이다. 그러나 건국과 6·25발발 전후를 체험하지 못한 2세들에게 보다 사실에 근접한 의식을 심어주는 일은 교육의 몫이다. 그리고 그 교육은 학교교육에 국한해서는 될 일이 아니다. 사회교육이 더욱 중요하고 효과적 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현대사의 핵심적 천탄들에 대하여 올바른 시각과 인식을 정립하여,2세들로 하여금 「의식의 방황」을 하지 않도록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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