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년 검사피의자신분 첫 만남/유혹 거절하다 88년 결국 덫에그것은 악연이었다. 이건개 전 대전고검장이 정덕진씨 형제를 알게된 것은 피할수 없는 숙명같았고 이들 형제의 끊임없는 유혹은 결국 전도양양한 것으로 보였던 유능한 법조인을 실족시키는 함정이 되고 말았다.
검사라는 직업. 근엄하고 화려하기도 하겠지만 내면을 파헤쳐보면 엄청난 스트레스와 긴장의 연속이다. 직업상 대하는 부류란 대부분이 도둑,사기꾼,깡패 등 사회를 혼탁케하는 범죄인들이다.
15∼16년전 30대 중반의 한창나이였던 이건개검사는 팽팽한 긴장속에서 패기있게 활동해온 검찰의 유망주였다.
그보다 앞선 71년 31세의 젊은 나이로 서울시경국장까지 역임했던 그는 77년 서울지검 특수부검사로 부임하면서 「도박꾼 정덕진」을 수사검사와 피의자 관계로 처음 만나게 된다.
이때는 정씨가 벌써 신건씨나 전재기씨 등 검찰의 몇몇 인사들을 알고 있던 때였다. 이 검사에게도 「은근한 전화」가 걸려왔지만 이 검사는 이를 단호히 거절했고 이때부터 10여년간 정씨와 이 검사는 오히려 「원수」처럼 지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검사는 그후 대검과 법무부 등을 두루거쳐 86년 특수수사를 총지휘하는 서울지검 3차장검사가 된다.
정씨가 슬롯머신업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한창 「사업확장」을 하던 시기였다.
정씨는 더 이상 검찰의 「잘나가는 실세」와 불편한 관계로 지낼수 없다고 판단,사교력이 뛰어난 동생 덕일씨를 내세워 접근을 시도했고 드디어 이 차장검사의 고교후배인 모방송사기자를 통해 관계를 트는데 성공했다.
이듬해 검사장으로 승진한 이씨는 88년에 지금 강력부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대검형사2부장이 된다. 조직폭력 등 강력계통의 사건을 전담하는 자리였다.
바로 이때 이씨는 정덕일씨에게 『건물매입자금이 필요하니 빌려달라』고 했고 덕일씨는 『잘 봐주십시요』라며 상환시기나 이자지급 방법 등에 아무 약정이 없는 거액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탁월한 검사 이씨가 도박꾼의 유혹에 넘어간 과정은 영원히 감춰질 것 같았으나 5년만에 드러나 이씨 자신은 물론 검찰조직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냈다.<홍윤오기자>홍윤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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