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논의 공식화는 새장/“의중 떠보기·시간벌기” 시각도북한이 25일 남북 정상회담의 실현가능성마저 언급한 특사교환을 전격 제의함으로써 경색국면의 남북관계가 새로운 장을 맞아가고 있다.
북한의 이날 제의는 지난 20일 우리측 대표접촉 제의를 수용하는 한편 한술 더 떠 적극적인 대화의사를 나타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는 일단 핵문제의 초점을 흐리거나 우리측의 의도를 떠보려는 전략적 의도가 숨어있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으나 지금까지 언급을 자제해왔던 「남북 정상회담」에 관해 구체적인 제안이 담겨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우선 이번 제의는 지난 2월25일 김영삼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언제 어디서나 김일성 북한 주석을 만나자』고 한데 대한 북한측의 첫 공식 회답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을만 하다.
단 취임사 당시의 상황과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한 현재와는 여건이 다르다는 점은 분명히 지적돼야 한다.
또 남북한간에 특사교환이 공식적으로 제의된 것은 처음이다. 남북간 특사파견은 늘 비밀리·비공식적으로 이루어져왔다.
그러나 북한이 상투적으로 주장해오던 비당국자간 협상주장을 자제하고 「최고위급의 중대한 뜻을 전달하는 특사」들을 통해 핵문제를 포함한 의제를 논의하자는 의사를 보인 것은 획기적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특사를 「통일문제를 전담하는 부총리급」이라고 지정한 것은 우리측 한완상부총리로 못박는 것으로 이는 한 부총리가 북측에 우호적일 것이라는 예단에서 나온 것으로 정부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특사교환이 과연 남북 고위급회담 등 기존의 남북대화 패턴을 송두리째 폐기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인지,아니면 최고당국자간의 간접대화 물꼬를 트려한 것인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그만큼 북한의 이번 제의는 이례적이다.
북한측 서신은 『권위있고 책임있는 특사교환이 이루어지면 귀측이 제기하는 남북 고위급회담 대표접촉에서 협의하려는 문제들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일단 남북 현안에 대해 긍정적 태도를 취하고 있으나 핵문제 등에 대한 시간벌기의 유인성 발언일 수도 있다.
더욱이 특사교환을 준비하는 실무접촉 책임자를 우리측이 제의한 고위급회담 대표접촉 책임자인 차관급으로 정하고 있어 특사로 고위급회담을 대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오는 31일 실무접촉을 가진뒤 부총리급 특사가 서울과 평양을 오가게 되면 시간적으로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가 6월12일 NPT 탈퇴 발표시한을 훨씬 지나 지연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 일각에서는 북한의 지금까지 협상행태로 볼때 기존 합의사항의 부담을 떨쳐버리기 위해 새로운 대화형태를 제의해오곤 했다는 점을 들어 경계하는 목소리가 있다.
즉 남북 기본합의서,비핵화 공동선언 등의 합의사항을 기피하기 위해 기존의 대화 틀을 깨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북한은 오는 6월2일부터 미국과 고위급 대회가 예정되어 있어 이에앞서 남북 당사자간 대화의 문을 열어놓아 북한이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긍정적 국제여론을 환기시킬 필요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 고위당국자는 『새정부가 과거 군사정부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대화상대로 거듭 인정하면서도 이쪽의 대응태도를 시험해보려는 전략이 깔려 있을 수 있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즉 북한은 미·북한 고위급회담을 목전에 둔 「절묘한 타이밍」에 우리측이 정면으로 거절하기 힘든 고단수의 다목적 포석을 내놓았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지난 1월25일 핵통제위원회 위원장 접촉을 마지막으로 중단됐던 남북대화도 4개월만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남북 정상회담은 양측의 최고 당국자간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그 실현여부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것이 사실이다.
6공시절 정부 관계자들은 정상회담 실현을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경주했으나 북한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북한은 이날 서한에서 「쌍방 정상들이 만나는 문제」라고 매우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북한이 이러한 태도를 보였다해서 조만간 정상회담이 실현되리라는 기대는 금물이다. 그러나 이번 제의를 계기로 남북 정상회담에 관한 논의가 양측간 공식화된다는 점에서 남북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아가고 있다고 해석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북한측 제의대로 특사교환이 이루어질 경우 우리측은 특사가 한완상부총리로 사실상 낙점돼 있고 북한측에서는 대서방외교에 오래 관계해온 김영남 부총리겸 외교부장이 나설 가능성이 가장 크다.<유승우기자>유승우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