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대통령의 새 문민정부는 「신」자가 들어가는 신조어를 좋아하는 나머지 너무 남발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과거 정권과는 판이하게 다른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과거의 잘못을 고쳐 나간다는 개혁의지에서 신한국이며 신경제 등 「새로움」을 강조하는 것까지는 좋았다.그러나 김 대통령이 24일 태평양경제협의회에서 행한 연설을 가지고 「신외교」라고 부르는 것은 다소 어색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신정부가 처음 밝힌 외교 안보 통일 정책기조라는 점에서 그런 수식어를 붙인 것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에서는 사실 우리가 그동안 추구해온 방침 그대로이고 새로운 내용이 담겨져 있지 않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라는 발등의 불을 끄기에 급급한 현 상황에서 그 문제의 해결방안없이 중장기 정책의 원칙을 밝히는 것 자체가 시선을 끌 수 없는 시점이기도 하다.
김 대통령이 밝힌 「신외교」의 주요내용은 원칙과 이상,도덕성을 바탕으로 민주 자유 복지 인권 등 인류보편적 가치를 중시하고 세계와 미래를 향해 개방적 적극적 외교를 전개하며 국제평화,군비통제,환경보호,빈곤퇴치 등 세계적 문제해결에 적극 기여하고 유엔 등 국제기구활동에 적극 참여한다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아시아·태평양시대를 맞아 역내의 안보경제협력을 추구하고 한미 동맹관계를 발전시키며 다자간 안보대화를 추진하고 아시아·태평양지역 경제협력체(APEC)를 중심으로 광역의 경협체제를 구축하며 이를 위한 관계국간의 정상회담을 제의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도 새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비슷한 성격의 정상회담이 제의되었지만 구체화하지는 못했음을 기억하게 된다.
이번에는 제의만으로 그치지 말고 실천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북한의 핵문제가 급선무이기 때문에 먼저 그쪽으로 외교역량이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통일정책에 있어서 김 대통령은 북한이 사고를 전환하여 핵문제 해결을 시작으로 태평양시대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면서 북한이 아시아·태평양지역 평화 및 경제질서에 편입되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남북한은 경쟁상대가 아닌 한민족 전체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번영을 위한 동반자라고 규정했는데 이것은 남북한이 냉전체제 붕괴이후 유엔에 동시가입하면서 이미 전세계에 선포한 원칙이다. 그러나 현실은 북한이 핵개발에 매달리면서 국제사회에서의 남북간 외교협력은 고사하고 대화마저 기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외교에서는 새로운 국제경제 질서에 맞추어 우리 경제의 개방과 국제화를 능동적으로 추진하고 개발도상국과 선진국간의 중간자적 역할을 강조했다. 앞으로 이 「중간자적 역할」에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
새정부가 출범한지 3개월이 넘어가는 판에 언제까지나 북한 핵문제에만 매달려 새정부의 중장기 외교정책을 대내외에 발표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라는 것도 이해한다. 뚜렷하게 이렇다할 새로운 것을 내보일 수도 없는 것이 현재 우리 외교 안보 통일정책의 한계라고 볼때 김 대통령의 「신외교」 연설은 현안문제와 목표들을 종합적으로 조리있게 정리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 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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