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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문화(장명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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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문화(장명수칼럼)

입력
1993.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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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화묘지를 만들고 호화별장을 짓기 위해 불법으로 산림과 농지를 훼손한 사람들이 잇달아 적발되고 있다. 호화별장에서 살다가 호화묘지에 묻히겠다는 「호화중독자」들의 집념은 그 무엇으로 막을 수 없을 만큼 끈질기다. 당국은 호화묘지·호화별장을 계속 단속하며 명단을 공개하고 법적처리를 하고 있으나,적발되는 숫자는 전혀 줄지 않고 있다.살아있는 사람들의 주택난 못지않게 유택난도 심각하다. 현재 묘지면적은 국토의 1% 정도이나 묘지로 쓸 수 있는 땅은 포화상태에 이르러 묘지가 더이상 국토를 잠식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다각도로 검토돼왔다. 전국의 분묘 2천만여기 가운데 40%를 차지하는 오래된 무연고 묘를 정리하여 새로운 유택지를 조성하는 방안,묘지의 소유형태를 영구 소유에서 한시사용으로 전환하여 묘지의 활용을 높이는 방안,묘지사용 면적을 줄이는 방안 등이 그동안 꾸준히 제시되었다. 정부는 오랜 논란을 거쳐 올해부터 공설묘지 사용기간을 15년으로 제한하고,묘지사용면적도 1기당 2평으로 축소했다.

묘지문화는 민족·종교·시대에 따라 다르며,전통적 방식을 바꾸기가 어렵고,금기가 많다. 묘지의 국토잠식을 막으려면 매장 대신 화장을 늘리고,문중이나 가족의 합동 납골묘역으로 묘지형태를 바꿔나가야 한다는 결론이 이미 나와있으나,개인도 정부도 이를 선뜻 시행하거나 강제하지 못하는 것은 묘지에 관한 우리의 의식이 매우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묘지문화는 일반 생활문화와는 달라서 개인의 자각만으로 바꾸기가 어렵다. 단독주택에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하기는 쉽지만,조상의 묘역을 아파트식 합동 납골묘역으로 바꾼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이 문제는 정부가 주도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새로 조성하는 공설묘지는 합동 난골묘역을 만드는 조건으로 분양하고,사설묘지나 공원묘지도 이를 따르도록 권장해야한다. 합동묘의 외양은 봉분·평면·아파트식의 탑 등 여러가지 선택이 있을 것이며,묘지와 관련된 연구를 해온 전문가들이 전통에 어울리는 모형을 만들어 권장토록 해야 한다. 묘지제도를 변화시키는데 따른 국민의 불안이 매우 크므로 공동납골형태를 권장하려면 신뢰할만한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연구팀을 구성해야 한다.

하나의 합동묘역에는 수십기의 납골함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이 공간이 다 찰때는 윗대 선조로부터 함을 내려 묘역에 뿌리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합동묘는 묘지의 수요를 줄일뿐 아니라 어려운 이들의 묘지구입비도 줄일 수 있다.

묘지의 소유를 영구소유에서 한시사용으로 바꾸는 문제는 이를 시행에 옮길 경우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15년후 매장묘를 파서 시신을 화장한다는 것,다른 사람이 묻혔던 묘역에 누군가 계속 다시 묻힌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호화묘지 단속과 함께 묘지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시도를 해야 한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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