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서봉수 9단 누구인가/잡초처럼 남아 유학파 대항한 「국산바둑」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서봉수 9단 누구인가/잡초처럼 남아 유학파 대항한 「국산바둑」

입력
1993.05.21 00:00
0 0

서봉수9단(40)의 응씨배 쟁취는 개인으로는 조훈현 9단의 그늘 아래서 굳어버린 「만년2인자」의 설움을 떨쳐내는 벅찬 기쁨의 승리였으며 한국 바둑으로서도 일본의 거센 파고를 넘는 저력을 다시금 확인하는 쾌거였다.특히 서 9단은 일본에서 바둑수업을 받지 않은 「순국산 된장바둑」의 1세대로 한국바둑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우승은 조 9단의 1회대회 쟁패와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일단 다음해인 71년 제4기 명인전에 출전한 서 9단은 당시 기계를 주름잡고 있던 김인,조남철 등을 꺾고 명인 타이틀을 쟁취하는 파란을 연출하면서 바둑팬의 가슴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서 9단은 이후 명인전 5연패로 일본 유학파의 파상공세를 저지하는 유일한 「국내파」로 활약한다.

이런 서 9단을 바둑계에서는 「집념의 승부사」 「표범」 「야생마」 「야성의 무법자」라는 사나운 별명으로 부르곤 한다. 자신도 『조화니 화해니 하는 말들을 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증오·공격·도전·투쟁·복수 등 살벌한 말들이 보다 진실에 가깝다』고 말하고 있다.

또 『적개심이 생기지않는 상대하고는 바둑이 잘 안된다. 그래서 나로서는 상대에 대한 적개심을 스스로 부추기는 것이 필승을 다지는 한 방법이다』고 독설에 가까운 말로 집념어린 바둑관을 드러낸다.

서 9단의 바둑인생을 이야기하는데 뺄수없는 인물이 있다면 물론 조훈현 9단이다. 70년대 중반부터 이창호 6단,조창혁 5단이 등장하기전인 80년대 후반까지 10여년에 걸친 「조·서 양분시대」에 두기사는 공세와 역공,도전과 응징,승리와 패배로 한국바둑사의 한시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조 9단과의 긴 싸움에서 회복불능 상태에 이르렀다는 느낌을 받을때마다 서 9단은 「잡초」같은 생명력을 발휘했다. 바둑계 일각에서는 『서 9단이 없었다면 조 9단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을것』이란 말도 나온다.

현재 서 9단은 여전히 매서운 조 9단의 칼날에다 이창호 6단,유창혁 5단 등 신진세력의 거센 도전속에서 고전하고 있다.

하지만 발전에 대한 무한한 흡수력,들풀같이 강인한 생명력,승부사적 기질,바둑에 대한 진지한 자세 등으로 나타나는 또 다른 도전에 대한 또다른 응전을 가능케할 것이다.

서 9단은 이번 응씨배 결승대국을 앞두고 「일생일대의 대승부」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같은 각오는 이번 대회에서 그대로 드러나 준결승 3번기에서 천하의 조치훈 9단을 맞아 육탄으로 돌격,2승1패로 역전승하는 처절한 투혼으로 나타났다.<서사봉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