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서 천여명참가 결속력 예전만 못해연희동의 5·18에 파란을 일으겼던 한총련 「전·노체포결사대」 1천여명의 활동은 19일로 사실상 끝은 맺었다.
연세대 학생회관에서 철야한 결사대학생 1백50여명은 쇠파이프로 무장한채 19일 상오 9시30분께 연세대북문을 통해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며 연희동 진출을 위한 「최후의 결전」을 벌였다. 18일 시위에서 최루탄발사기 등 약간의 진압장비를 빼앗긴 경찰은 이날 20여명의 부상자를 내면서 김모군(22·전남대) 등 학생4명을 연행했다.
이어 시위진압장비 반환과 해산을 요구하는 경찰과 연행학생석방을 요구하는 결사학생들과의 전화 협상이 시작됐고 학생들 사이에서 사실상 결사대 해산에 대한 공감이 이루어 졌다.
결사대대장 나모군(25·전남대)은 『상시조직으로 출범한 것은 아니지만 이틀간의 투쟁을 통해 어느정도 효과를 거뒀다』고 자평한뒤 『비록 전·노 두 책임자를 「체포」하진 못했지만 진상규명과 처벌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 5·18기간에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문제를 가장 치열하게 표출했던 「전·노체포결사대」는 한총련 산하 지역학생단체별로 모아져 18일 연세대 출범식에서 발대한 한시조직. 정확한 숫자는 알수없으나 광주·전남지역 총학생회연합(남총련) 소속 학생 85명을 주축으로 부산·경남지역 총학생회 연합학생15명,서총련산하 서부지역 총학생회 연합학생 2백여명,경인지역 총학생회 연합학생 4백여명,전북 2백여명 등과 대구·경북지역 약간명 등 1천여명이다.
그러나 신정부 출범후 전국단위로 학생조직이 연대한 경험이 없어서인지 산만한 체계를 보인 것도 사실이다. 결사대학생중에는 결사대장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고 결사대장도 지역별 결사대 학생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룻밤 철야를 하면서 남총련학생 등을 제외한 대다수의 서울지역 결사대학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도 이전과는 현저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전·노체포결사대」는 한마디로 의욕만 충천한 「오합지졸」인 셈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5·18정서의 줄기를 실감있게 보여준 「부표」였다.<장인철기자>장인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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