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에도 청산과 개혁의 일대 자정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앞서 대법원이 개선안을 마련한데 이어 17일 서울민사지법 소속 단독판사 38명이 자율모임을 갖고 보다 과감한 사법부 개혁과 민주화를 촉구하기에 이르러 그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젊은 법관들의 이같은 집단행동은 사법부의 보수적 성향에 비추어보면 극히 이례적이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문민정부 출범후 지금껏 재산공개 문제나 자정과정 등에서 사법부의 개혁움직임이 소극적이라는 국민적 비판도 받아왔던 만큼 이같은 젊은 법관들의 행동이 사법부내에 보다 적극적이고 청신한 자정·개혁운동을 촉진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그 모임에서 유신이후 사법부 독립침해 사례의 공개·재평가 문제가 진지하게 논의된 사실이다. 이같은 재평가 요구야말로 과거의 잘못에 대한 「자성과 정리」를 담은 강경한 내용이어서 논의 자체만으로도 일대 파란을 예고하는 것이다. 과거 권력의 시녀노릇이나 하던 법관들로부터 물러나야 진정한 개혁도 시작될 수 있다는 젊은 법관들의 목소리야말로 진정 오늘의 사법부를 뒤흔드는 진동이 아닐 수 없다 하겠다.
새시대가 시작되면서 이같은 요구는 용기있는 젊은 법관들에 의해 개인차원에서 이미 제기된바 있었다. 『법원이 과거 안기부·검찰·기무사 등으로부터 떨어져 과연 얼마나 자유롭게 재판권을 행사했고,법관들중 누가 국민들에게 헌법정신에 투철했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고 보다 솔직한 자성을 촉구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목소리가 잇따르는 가운데서도 지금껏 사법부의 개혁은 국민은 물론 젊은 법관들의 기대에 따르지 못해온 것이 사실이다. 재산공개 문제를 놓고서도 국민기대와 달리 미온적 태도로 일관한데다,대법원 개혁안이라는 것도 변호사의 판사실 출입제한·법관윤리규범 제정·골프교제 규제 등 지엽적인 문제로만 흘렀다는 평가가 있었다. 결국 이같은 소극적 자세가 젊은 법관들의 집단행동을 가져오게 하기에 이른 것이다.
오늘의 사태를 보며 교훈적으로 생각나는게 지난 71년의 사법파동이다. 당시 일괄 사표를 내면서까지 사법부 독립을 위해 싸웠던 젊은 법관들의 값진 의기가 그후 유신 5·6공을 거치며 어떻게 이지러져 왔던가에 생각이 미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어둠의 세월도 지나 새 문민시대가 열린 오늘이다. 젊은 법관들의 올곧은 목소리를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란 이제 더이상 없어졌다. 오히려 그들의 뜻을 진정한 사법부 거듭나기의 에너지로 수용,승화시키는 결단과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법부 거듭나기를 위해서는 자성과 정리에 겹쳐 경직된 인사관행과 비민주적제도의 개혁도 당연히 뒤따라야 한다. 사법부가 그런 과정을 철저히 하나하나 다지면서 자정과 개혁을 수행해 나갈 때 진정한 사법부의 독립은 보전되고,국민신뢰도 되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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