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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밖 변화를 생각한다/기류 조류(김경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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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밖 변화를 생각한다/기류 조류(김경원칼럼)

입력
1993.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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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나라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다행한 일이다. 대부분 필요하고 바람직한 변화임에 틀림없다.그런데 사실은 나라안의 변화 못지않게 나라밖에서도 중대하고 근본적인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지난 몇년 사이에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냉전이 종식되는 것을 보면서 세상이 이처럼 빨리 변할 수 있을까 하고 한편 놀라기까지 했다. 그런데 벌써 탈냉전시대 마저도 과거역사로 되어가고 있으며 우리의 국제환경은 또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성장

우선 지정학적 세력균형이 변하고 있다.

냉전의 종식은 유라시아대륙의 내륙세력이 몰락하고 해양세력이 승리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 냉전의 종식보다 더 근본적인 지정학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소련은 쓰러졌지만 중국은 그어느 때보다 세차게 일어서고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예언한대로 20년내에 중국경제가 미국경제를 능가하는 세계최대 규모의 경제가 될는지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하여튼 중국이 눈부신 속도로 그리고 어마어마한 규모로 성장하고 있는것 만큼은 틀림없다.

중국의 현대화는 5백년전 동양이 기울어지면서 서양이 일어섰던 근대사의 균형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서 동북아에서는 지난 1백년동안 혼란을 거듭해온 불안정한 세력균형에 구조적인 재적응을 가능하게 만들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는 경우 우리나라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중국의 성장을 목격하면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동북아 질서의 구조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중국이 지배하는 전통적 질서의 부활을 원하지 않는다면 이 지역의 지정학적 균형을 안정화하기 위한 우리의 정책수단은 무엇인가?

참으로 다행한 일은 현재 우리 정부가 중국과 긴밀한 대화를 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중대화는 북한의 핵의혹 문제를 주 아젠다로 하고 있지만,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의 핵문제 이상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현재의 한중대화가 궁극적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동북아질서를 구현하는 과정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기로에선 무역체제

둘째로 국제무역체제의 미래가 자유무역과 관리무역(Managed Trade),보편주의와 지역주의,질서와 혼란의 기로에 서 있다.

물론 고전적 이론에서처럼 순수한 자유무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섬유,철강,자동차 등에서 보는 것처럼 이미 어느정도의 관리무역은 관행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가트규범에 의한 보편적 자유무역이 원칙적으로 지배하느냐,아니면 전체적인 무정부 상태에서 지역블록 또는 개별국가의 정치적 힘이 무역관계를 지배하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경제의 사활을 결정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국제무역체제의 이러한 중대한 결정의 시점에서 과연 우리가 취해야 할 입장은 무엇인가? 마지막 순간까지 방관자의 입장에서 변화를 거부하는 자세만을 고집해야 하는가? 아니면 우리의 경제가 힘차게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넓게 열린 세상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적극 노력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탈 자본주의사회」

마지막으로 우리는 사회주의체제의 몰락과 더불어 자본주의 사회도 구조적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떠야 한다.

자본주의는 생산의 기본요소 가운데 자본의 역할이 결정적 비중을 갖는 경제체제를 의미한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을 소유하는 자본가 계급과 이에 모순되는 관계에 있는 노동계급간의 갈등이 정치사회를 지배하게 된다. 그런데 「피터 드러커」가 「탈자본주의사회」(Post­Capitalist Society)에서 강조하고 있듯이 고도산업사회의 「생산성혁명」은 자본,노동,자원 등이 아닌 지식의 활용에 기인하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생산기술이나 과정 또는 생산제품 등에 지식이 활용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탈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지식자체를 활용,획득,조직하는데 지식을 적용한다는 것이 다르다. 즉 지식을 활용하기 위한 지식이 필요하게 되고 지식이 있으면 자본,노동,자원은 비교적 쉽게 조달될 수 있지만 지식이 없으면 전통적 생산요소만 갖고는 높은 생산성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지식은 개인에 속한다. 조직이나 사회가 지식을 소유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지식이 조직의 능률을 가능케 한다. 사회가 할수 있는 일은 개인이 지식을 획득,확대,응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과연 우리 사회는 개인의 노력과 성취,개성과 이니셔티브를 억제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의 교육제도는 집단생활의 미덕을 강조한 나머지 지성적 평준화를 강요하고 우리의 사회,문화 및 정치는 공동체의 이익을 강조한 나머지 지성적 창조성을 제한하는 것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탈자본주의사회」로의 전환에서 낙오자가 될 위험은 없는가?

결국 나라안에서의 변화는 나라밖에서의 변화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2000년대를 향한 대전환점에서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서로 고민하고 토론하는 것이 필요하리라고 본다.<사회과학원장·전 주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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