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적 의혹이나 척결기대에 못미친채 지지부진해온 슬롯머신 비호세력 수사가 갑자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지난 주말과 주초에 잇달아 터져나온 6공 실세 박철언의원 5억원,엄삼택 병무청장(전 안기부 기조실장) 2억원 수뢰혐의 포착 및 광주지검 최인주 수사과장의 돌연한 자살은 정덕진씨를 둘러싼 탈세·비호 사건수사의 일대전환과 진전을 예고하는 것이어서 관심이 한결 고조되고 있다.일찍부터 의혹과 심증은 있었지만 물증 포착이 어려웠던 터였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이미 구속된 경찰의 천 치안감에 이어 정계·관계·검찰의 깊은 연루마저 풀어낼 수 있는 한가닥씩의 실마리라도 발견된 셈이이서 정씨 사건의 복합·총체적 비리실체도 조만간 그 흑막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하겠다. 이럴 때 일수록 검찰은 더욱 철두철미하게 성역없는 수사와 함께 구 시대의 총체적 비리척결이 새시대 전개의 필수 전제라는 사명감으로 사건의 전모를 속시원히 파헤쳐주길 당부한다.
5억원 수뢰사실이 포착된 걸로 알려진 박 의원이 누구인가. 초·중반기 6공 정권을 좌지우지했던 실세중의 실세였고,전임 대통령의 친인척중 한 사람으로 당시의 온갖 특혜 때마다 그 배후로 자주 들먹여져온 인물이었다. 또 6공 후반기 3당 합당후 당시의 김영삼 민자당 대표와의 불편했던 관계도 인구에 회자되어온바 있어,지금껏 오랫동안 덮여왔던 정씨의 슬롯머신 수사나 금융비리 척결이 박 의원의 뒤캐기도 겸했다는 소문마저 공공연했던 터였다.
만약 박 의원의 혐의가 본인의 거듭된 부인에도 사실로 드러나면 슬롯머신 비리는 정권과 연계된 엄청난 사건으로 비화될 것이다.
박 의원에 겹쳐 혐의가 포착됐다는 엄 청장 역시 정씨의 초기 검찰 진술과정에서 이미 그 이름이 돌출된바 있었다. 특히 엄씨의 관련혐의가 안기부 재직시절의 것이어서 박 의원과 같은 정권실세에다 막강한 권력기관 간부까지 비호세력에 가담했다면 문제는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그런 엄씨가 지난 대선 때의 공로로 문민정권이 탄생한 뒤에도 병무청장이라는 고위직을 차지했다는 소문이고,그래서 그런지 재산공개 과정에서의 파문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게 사실이고 보면 문제가 또다른 차원으로 번질 수 있는 폭발성을 충분히 지녔다 하겠다.
그렇지 않아도 천 치안감 구속후 경찰의 반발이 있었다고 한다. 『왜 우리만이냐』는 항변이었을 것이다. 이런 단계에서 최 수사과장의 자살은 이제 사건의 불똥이 검찰에까지 튀었음을 충분히 예고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사건수사에서 검사의 손발이 되어 실제수사를 담당하는 책임자가 슬롯머신 지분을 가졌었고,폭력단 보스이자 지역슬롯머신계 대부와 유착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은 검찰 연루의 개연성을 한결 높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사건수사가 이 단계로까지 확대됐으면 검찰의 자세가 새삼 중요하다. 당연히 제살마저 베는 각오가 있어야겠고,검찰을 지휘할 새정권의 자세도 아울러 시험대에 오를 수가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사건수사는 총체적 비리척결의 바로미터요,시금석이라할만 하다. 당국의 투철한 시대적 사명감을 거듭 당부하면서 괄목할 수사진전을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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