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아르헨티나 엘살바도르/군사통치 후유증 심각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르헨티나 엘살바도르/군사통치 후유증 심각

입력
1993.05.18 00:00
0 0

◎「부모살해 아기입적」 반인륜 규탄/아르헨티나/「엘모조테 주민대학살」 사면파문/엘살바도르오랜 군사통치의 늪에서 막 빠져나온 아르헨티나와 엘살바도르는 과거 살인,고문 인권유린을 자행한 권력자들을 사면했다.

가해자와 집권세력들은 「화해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상처입은 자들은 「강요된 용서」라고 했다. 사면은 일단 과거의 죄악들을 묻었지만 진실은 죽거나 사라지지 않은채 여전히 정의를 외치고 있다.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는 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76∼83년 이른바 「추악한 전쟁」을 치렀다.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는 이 기간동안 좌익 반정부세력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살인 납치 고문을 저질러 정부 공식통계로만도 약 9천명이 실종되고 2천명 이상이 비밀매장되거나 수장됐다. 83년 12일 알폰신 대통령의 민선정부가 들어서면서 비델라 전 대통령을 비롯한 학살자들은 재판에 회부돼 종신형이나 장기금고형 등을 받았으나 90년 사면됐다.

지난 3월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추악한 전쟁」의 묵은 상처를 거듭 확인해야 했다. 좌익 반정부 투쟁을 하던 부부를 납치 살해한뒤 그들의 갓난아이를 키운 전직 비밀경찰 부부가 법원으로부터 각각 7년,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죄목은 유괴 불법감금 공문서 위조였다. 원수를 부모로 알고 자란 아이는 다니엘라 푸르치라는 18세 소녀다. 다니엘라의 할머니는 난지 1년8개월된 손녀를 잃고 나서 82년부터 끈질긴 추적을 해온 끝에 마침내 다니엘라를 찾아냈고 85년 유전자 검사로 혈연임을 확인했다.

이 나라에는 다니엘라의 할머니와 같은 처지의 많은 다른 할머니들이 있다. 「5월광장의 어머니회」로 더 잘 알려진 이들은 군부독재가 서슬 푸르던 77년 4월30일부터 지금까지 매주 목요일 하오 3시30분이면 어김없이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심에 있는 5월광장에 모여 사라진 자식과 손자 손녀를 찾아내라며 절규한다.

「추악한 전쟁」 당시 경찰은 감옥에서 태어났거나 부모가 살해된 아기들을 아이가 없는 정부 관리 등에게 돈을 받고 팔거나 직접 거두었다. 아이의 신분은 철저히 감춰졌다. 5월광장의 어머니들이 그렇게 잃어버린 손자 손녀 2백17명 가운데 54명만이 확인됐고 나머지 1백63명은 알 길이 없다.

제2,제3의 다니엘라는 더 나올 수 있다. 진실과 정의가 아르헨티나에 온전히 돌아온다해도 다니엘라들과 5월광장 어머니들의 상처를 아물게 할 참된 평화는 아직 멀다.

▷엘살바도르◁

1981년 12월11일 엘살바도르 북동부의 산골마을 엘모조테가 지도에서 사라졌다. 전날 정부군이 좌익 반군 게릴라를 소탕한다며 들어와서 이튿날 아침 주민들을 한 건물에 몰아넣고는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학살한 것이다. 이날부터 사흘간 엘모조테와 인근 마을을 합쳐 1천여명의 주민이 죽고 2명만이 살아남았다.

엘모조테 학살사건은 79∼91년 이 나라 정부와 좌익 반군 사이에 치러진 12년 내전동안 군부가 저지른 죄악 가운데 가장 끔찍한 것이다. 내전중 죽은 자는 7만5천명이 넘는다. 휴전 이듬해인 92년 4월 내전중 벌어진 인권유린 사례를 조사하는 유엔 엘살바도르 진실위원회가 설치돼 지난 3월 그 보고서가 나왔다. 이 보고서는 내전중 군부가 민간인을 대량 학살했으며 인권유린 사례의 85%가 그들이 저지른 것이라고 밝히고 에밀리오 폰체 국방장관을 비롯해 40명의 군장성을 학살 책임자로 거명하며 이들을 공식추방을 요구했다.

보고서가 나오고 닷새만인 3월19일 이 나라 의회는 유엔보고서가 밝힌 범죄자들을 총사면했다. 학살 장본인인 우익 집권당이 의석 다수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크리스티아니 대통령은 유엔보고서가 편견에 가득찬 부당한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고통스런 과거는 이제 역사의 장에 돌려주자』고 말했다. 이로써 총사면으로 처벌받지 않은 죄악과 함께 정의도 묻혔다.

한편 이에 앞서 지난 2월 미 국무부는 엘살바도르 내전 당시 레이건 행정부의 엘살바도르 군부지원설을 조사할 위원회를 설치했다. 유엔 엘살바도르 보고서는 미국이 엘모조테 학살을 은폐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81년 사건 당시 미 국무부는 엘모조테에서 학살이 자행된 증거는 없다고 발표했었다.

유엔보고서나 엘살바도르 의회의 사면결정,미 국무부의 조사위원회 그 어떤 것도 학살당한 이들의 유해와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보다 강력한 웅변은 없다. 엘모조테 희생자중 지금까지 1백여구가 발굴됐다. 이들 유해의 85%는 12세 이하 어린이다. 아무도 이 무고한 어린 죽음에 사죄하지도 처벌받지도 않았다. 엘살바도르에서 정의는 숨죽인 휴화산으로 있다.<오미환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