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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한씨 광주품에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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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한씨 광주품에 돌아온다

입력
1993.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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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선으로 밀항,미서 망명생활/17일 여권신청… 2개월뒤 귀국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지명수배자 16명중 유일한 실제인물인 윤한봉씨(46)가 꿈에 그리던 고국,광주의 품에 안길 수 있게 됐다.

윤씨는 그러나 13,14일 이틀간 형 광장씨(52·광주 동구 서석동)와 2차례 국제전화통화를 하면서 『광주항쟁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핵심을 비켜간 김영삼대통령에 대해 신뢰감이 가지 않으며 12년간 LA 현지서 펼쳐온 민족민주운동사업 마무리작업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아 귀국은 2개월후나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윤씨는 또 13일 총리실에 자신이 결성한 재미 한국청년연합(한청련),한겨레운동 민족연합 등을 이적단체로 규정한 한국정부측이 과연 안전귀국을 보장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의서를 제출했으며 『오는 17일 귀국의 첫 단계로 LA 총영사관에 여권 발급신청을 내겠다』고 밝혔다.

윤씨는 매년 5월18일이면 LA 민족학교에 모신 광주 영령위패 앞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행사를 치러왔으며 87년 4월 미국정부가 정치적 망명을 허가했는데도 시민권 대신 영주권을 택할 만큼 귀국의 그날을 손꼽아왔다.

윤씨는 88년 12월 강신석목사 등 광주지역 재야인사들이 결성한 「윤한봉선생 귀국추진위원회」의 도움으로 귀국을 시도했으나 검찰측의 「지명수배중」이라는 답변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었다.

윤씨가 미국망명에 오른 것은 81년 4월30일. 내란 주요임무 종사 등의 혐의로 계엄당국에 의해 지명수배되자 1년동안 도피생활했던 윤씨는 이날밤 외항선원으로 위장,마산항에 정박중에던 3만5천톤급 화물선 표범호에 몸을 실었다.

그는 35일간의 항해기간중 화물선 밑바닥 화장실이 딸린 의무실에서 라면 8개,꿀 0.5ℓ로 연명하는 초인적인 인내심을 보여 다른 선원들을 놀라게 했다.

윤씨는 미국 LA 도착후 83년에 「민족학교」를 설립하고 84년에는 「재미 한국청년연합」을 결성,조국민주화와 통일운동에 앞장서는데 노력했다.

윤씨는 74년 전남대농대 재학중 민청학련 사건 전남북 책임자로 구속돼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1년여 복연한뒤 풀려나 77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다시 구속되는 등 군사독재정권하에서 형극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황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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