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역사적 사실」이라는 말을 한다. 역사학에서 사실과 사실이 구분됨은 초보의 상식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적는 것이 곧 사실이 되지는 않는다. 역사를 기록하는 사가의 눈,즉 사안을 거쳐야 단순한 자료가 아닌 역사적 사실로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비판의 안목이 필수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중국의 제나라에서 최저라는 세도가가 그 임금인 장공을 죽인 사실이 있었다. 그 때 제나라 태사는 「최저가 장공을 시해하다」라고 적었다. 발칙한 자라고 태사를 죽여버렸다. 태사의 아우가 같은 내용을 다시 적어 놓았다. 이 아우도 죽였다. 아우의 아우가 또 기록에 남겼다. 같은 내용 즉 사실을 세번이나 쓰니 포악한 최저일지라도 마지막 기록자만은 죽이지 못했다. ◆사기의 재태사공세가편에 나오는 역사의 기록은 이런 역사적 사건마저 깔려 있다. 사기를 저술한 사마천은 사기의 엄숙한 사명과 역사기록의 준엄함을 이렇게 우회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역사의 사실은 속일수도 고칠수도 없다. 역사의 기록자라면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한치의 왜곡도 허락하지 않는 용기와 의지가 필요하다. 역사의 기록은 역사의 심판과 같다. 역사의 심판이 두렵다는 말은 결코 만들어낸 수사가 아님을 깨닫는다. ◆황인성 국무총리의 『12·12는 합법이다』는 발언이 파문을 일으켰다. 잇달아 유감이라는 표현으로 가라앉을 성격이 아니었다. 파문이 계속될 기미가 일자 청와대는 「12·12는 하극상에 의한 군사쿠데타적인 사건」이라고 정리하였다. 왜곡된 역사는 바로 잡아야 한다는 단서가 달렸다. 이것은 현실의 벽을 감안한 정치의 해법이고 문법이라고 받아들이고 싶다.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는 지금으로선 미지수이다. 우리 현대정치사엔 정리 안된게 너무 많다. 4·19,5·16,6·10,6·29,5·18 등 성격규정이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사가의 사명이 그만큼 무거워진 셈이다. 그럴수록 정확한 사실에의 접근과 검증이 요구되고 용기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역사를 심판할 사가의 사명이 얼마나 막중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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