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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김영희사건(장명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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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김영희사건(장명수칼럼)

입력
1993.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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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 2월 섬유업체인 우림산업에 근무하던 53세의 여성 이인영씨는 여자 53세,남자 55세로 남녀의 정년을 다르게 규정한 취업규칙에 의해 정년퇴직을 하게 되자 중앙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다. 노동위원회는 그의 「정년퇴임」이 「부당해고」임을 인정하고 우림산업에 그를 복직시키라고 명령했으나,회사측이 불복하여 이 사건은 법정으로 가게됐다.대법원은 지난 11일 『남녀의 정년을 차별한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은 무효』라고 판결함으로써 2년이상 끌어온 이 사건에서 이인영씨에게 승리를 안겨줬다. 대법원 특별3부는 판결문에서 『남녀의 정년차별은 남녀고용평등법과 근로기준법에 위배된다. 회사측은 일부부서의 경우 양호한 시력이 요구되어 남녀간 차별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성별에 따라 시력감퇴 정도에 차이가 난다는 합리적 근거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난 89년 대법원은 전화교환원이던 김영희씨가 한국전기통신공사를 상대로 낸 여성차별 정년 무효확인 상고심에서 김씨에게 패소를 안겨준 원심을 파기했고,김씨는 서울고법에 재항소하여 승소했다. 이번에 이인영씨는 2년3개월만에 이겼으나,김영희씨는 6년4개월이라는 지루한 법정투쟁을 벌였다.

82년 1월 체신부에서 분리된 한국전기통신공사는 55세가 정년으로 돼있는 인사규정에 단서조항을 붙여 여성이 대부분인 전화교환원의 정년을 43세로 내렸는데,김영희씨는 이 조항에 묶여 82년 12월 퇴직했다. 그가 곧바로 소송을 제기하자 여성단체들이 힘을 모아 그를 지원했고,이태영·홍성자·강기원·황산성변호사 등이 무료변론을 맡아줬다. 그는 1심·2심에서 『전화교환직은 여성만의 직종이 아니므로 남녀차별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패소했으나,89년 4월 끝내 이겼다. 그는 50세에 직장으로 복귀했다.

『개인적으로는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여성전체의 일이라는 다짐으로 힘을 얻곤 했다』는 김영희씨의 투쟁은 6년4개월에 걸쳐 사회적인 관심속에 진행되면서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다. 85년 교통사고를 당한 한 직장여성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미혼 직장여성의 정년을 평균 결혼연령인 25세로 잡고,그 이후에는 가사노동 일당으로 배상액을 계산하라는 1심 판결이 나왔던 「이경숙사건」을 2심에서 「55세 정년」으로 뒤집은 것도 「김영희사건」의 영향이 컸다.

87년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었으나 아직도 많은 기업들은 여성차별의 관행을 버리지 않고 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이런 많은 기업들에 쐐기를 박는 것이지만,아직도 이 나라의 여성들에게 「평등」이란 「싸워서 얻는 것」이라는 현실을 일깨워준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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