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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와 식언/권대익 정치부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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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와 식언/권대익 정치부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3.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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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6일 현실정치에 대한 염증과 환멸을 느껴 의원직을 사퇴코자 했던 본인은 오늘 그 의사를 철회합니다』12일 상오 9시30분 국회 교육위 소회의실. 정주일의원(국민)은 수염을 기르고 나와 가끔 미소까지 짓는 여유를 보이며 자신의 사퇴의사를 태연히 번복했다.

이 자리에는 국민당의 김동길대표를 비롯한 소속의원들이 자리를 함께해 정 의원의 식언에 동참했다.

그의 회견내용은 지금 사퇴할 경우 항간에 나도는 슬롯머신사건과의 연관설을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결백이 밝혀질 때까지는 의원직을 내놓지 않겠다는 주장이었다. 구리시민들의 사퇴번복 권고도 상당히 거셌다는 부연설명도 잊지 않고 추가되었다. 그는 특히 자신이 사퇴할 경우 국민앞에 사죄해야할 대상들이 자기 반성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그렇지 못했다는 해괴한 주장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의 사퇴번복에는 국민당 지도부의 설득도 한몫을 했다. 국민당으로서는 한석이 아쉬운 형편이기 때문이었다.

정 의원은 불과 40여일전 눈물을 흘리며 정계은퇴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그는 「철새정치인」 등의 표현까지 써가며 기성정치권에 대한 비판을 주저하지 않았다.

코미디언 출신인 정 의원이 정계에 입문해 무슨 역할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정치를 희화화시키는데 앞장섰다는데 대해서는 별다른 이론이 없는 것 같다. 지난 4월 정계은퇴를 선언했을 때 그의 결정이 다소의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정계은퇴 선언만큼은 코미디가 아닐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 자신이 그토록 비난했던 정치권의 구태를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되풀이하고 있다. 정가 일각에서는 그가 의원직을 내놓지 않는게 슬롯머신 연루설 등에 대비한 보신책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어 씁쓸함을 더해주고 있다.

정 의원의 의원직 사퇴번복은 개혁정국의 와중에서 어려움에 처한 정치권의 이미지를 한층 더 실추시키고만 있다. 정 의원은 기성정치권에 경종을 울리기는 커녕 이를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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