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하오 2시 국회 재무위. 회의시작 시간이 되자 재무위 소속의원들이 하나 둘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다들 표정이 밝지 못했다. 한 의원은 『별로 할 맛이 안난다…』라고 기운없이 말했다.국세청 업무보고에 이은 의원들의 질의는 1시간여만에 싱겁게 끝났다. 질의의원도 4명에 불과했다. 답변준비에 나선 국세청 직원들은 한결 여유있는 표정이었다. 과거 열띤 공방전이 자주 벌어졌던 재무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재무위 주변에선 『뭔가 고장났다』 『유고상위다』라는 비유가 나오는 상황이다.
외형만 그런게 아니다. 내용은 더욱 심각하다.
질의의원 누구도 핵심현안을 정공법으로 다루고 있지 않았다. 국세청의 현안이 슬롯머신의 대부 정덕진씨의 탈세사건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지난 91년초 서울지방국세청은 정씨의 탈세를 밝혀내고 1백37억원을 추징했으면서도 고발하지 않아 세간의 의혹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를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한 야당 의원만 정씨 사건과 관련,『국세청이 범법자를 비호하는듯한 인상마저 주었다』고 언급했을 뿐이다.
비단 국세청 질의만 「속빈강정」은 아니었다. 전날인 10일 재무부에 대한 질의에서도 현안인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은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맥빠진 분위기에도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다. 동화은행의 경우 동료의원의 연루설이 나도는 마당이니 의리상 가혹하게 추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슬롯머신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이 알지 국세청이 뭘 알겠느냐』는 세심한 배려가 뒤따랐다.
그러나 추경석 국세청장이 몇몇 야당 의원이 질의에 『서면답변 하겠다』라고 말해도 아무도 이의제기를 못하는 분위기는 이들 변명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대목이다. 한 의원은 구속된 이동근의원과 와병중인 이원조의원의 빈자리를 가리키며 『저게 진짜 이유』라고 말했다. 사정한파를 비유하는 말이었다. 빈자리와 빈질문의 재무위….
행정부 견제는 커녕 사정한파의 눈치보기에 급급한 현 국회의 씁쓸한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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