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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롯머신협 「말잔치 모임」/주인·내빈들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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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롯머신협 「말잔치 모임」/주인·내빈들의 「어록」

입력
1993.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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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봉사 단체로 발전”/사업보고/“준법정신 발휘 친목회”/경찰 격려사/“도와줘 정예부대 과시”/장성 감사말/“성실신고로 납세협조”/세무관리 치사『오로지 자생단체로서 사회와 불우한 이웃을 위하여 봉사하는 본회는 이제 명실공히 사회봉사사업단체로 발전하였습니다. 이윤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시킬뿐 아니라 고액납세자로,모범기업인으로 발전하게 됨으로써 관계당국과 사회로부터 찬사를 받게된 현실은 우연한 일로 간과할 수 없다고 봅니다』

말이 춤춘다.

86년 11월18일 관광호텔 슬롯머신협회로 발족해 지난해 11월1일 사단법인 슬롯머신 중앙협의회로 등록한 빠찡꼬업자들이 89년 3월 모임에서 당시 총무이사 정덕일씨(44·잠적중·뉴스타호텔 대표)의 88년 사업보고 인사말중 일부분이다.

이들이 긁어모으다시피한 검은 돈중 몇푼을 받아든 이들의 말은 어떤가.

『어떠한 사건에 대한 로비활동을 한다해서 인식이 나쁜데 귀협회는 그야말로 친목회로서… 준법정신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숭고하고도 훌륭한 정신밑에서 귀협회가 발전되고 단합된 모습을 보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89년 이 협회 정기총회에 참석한 당시 서울시경 보안과장 K씨의 격려사중 한대목이다. 경찰은 빠찡꼬업자들로부터 86년부터 5년간 각종 명목으로 10억여원의 기부를 받았다.

빠찡꼬업자들의 위문품을 전달받은 한 야전군 중장은 육군 참모차장으로 보직받으면서 이들에게 『여러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에 명실공히 전천후 정예군단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이번에 육군 참모차장으로 보직을 받았습니다.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하고 고마워했다.

빠찡꼬가 한창 호황이던 시기인 89년에 서울지방 국세청 부가세과장 M씨도 이들의 정기총회에서 말했다. 『자율적으로 납세업무에 적극 협조하시어… 성실한 신고로 전업소의 납세평준화를 이룩하도록 협조해주신 회원여러분께 감사합니다』 그런데 빠찡꼬 대부 정덕진씨(53·구속)는 다음해 서울지방 국세청에서 자그마치 1백80억원의 세금을 추징당했다.

불우청소년들을 도운다며 이들 앞에서 내세우는 업자들의 말은 더욱 들어볼만하다.

『우리도 과거에 여러분과 같은 어려운 일을 많이 겪었습니다. 굳세게 살아가려고 애쓰던 때도 있었습니다. 우리의 순수한 마음을 이 사회가 올바로 받아들이지 않아서 어려웠습니다』

정씨 3형제의 맏형 덕중씨(56)는 「불우청소년가장 초청 격려잔치」에서 빠찡꼬업자들의 처지를 불우청소년에 비유하고 있다.

이들의 「선의」라는 포장에 싸인 검은 돈을 받아든 한 고아원장은 감격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새삼 느낍니다. 우리나라에 정말 명철한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빠찡꼬업자들은 이런 어록과 사진들을 담아 홍보자료로 만들어 각계에 뿌렸다. 이 자료에서 각 업소 주인들을 소개하는 페이지의 제목은 「사명감있는 인물들」이었다.<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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