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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공원(김성우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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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공원(김성우문화칼럼)

입력
1993.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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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의 5월5일 어린이날 전국의 어린이들은 어디서 무엇을 즐기고 지냈을까. 예년과 다름없이 어린이대공원이며 무슨 랜드며 자연농원 같은 곳이 대만원이었다. 한때나마의 해방도 좋고 자연과의 친교도 유익하지만 동물원이나 놀이터 말고도 좀더 교육적인 마당은 없을가.세계의 웬만한 나라에는 그 나라를 대표할만한 동화들이 있다. 그 동화들이 책장속에만 숨어있는 것이 아니라 거리에 나와 어린이들과 함께 놀아준다. 우리나라에는 그런데가 없다.

나라마다 전래의 민화속에는 동화가 많지만 이것을 맨처음 채집하여 집성한 것이 독일 그림형제의 동화집이다. 이 동화집의 현장을 독일에서는 「동화가도」라 부른다. 프랑크푸르트 인근의 하나우에서 북부의 브레멘까지 장장 4㎞에 이르는 길이다. 하나우는 그림형제의 탄생지로 시청앞에 세워진 이들의 동상이 동화가도의 출발점이 된다. 중도의 슈타이나우,마르부르크,카셀 등은 형제가 성장하면서 동화들을 집필한 곳이고 이들의 고가는 「동화의 집」 또는 기념관이 되어 남아있다. 인구 5만의 하멜른은 동화 「하멜른의 쥐잡이꾼」의 무대다. 매년 5월부터 9월까지 일요일마다 이 동화가 거리에서 실연된다. 페르덴이란 곳의 프라이차이트 공원에는 「동화의 숲」이 있어서 「헨젤과 크레텔」의 과자의 집 등과 동화 주인공들을 전동식 인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브레멘은 「브레멘의 음악대」로 유명한 곳인 네동물의 조각이 세워져 구경꾼들이 들끊는다.

세계의 아동문학에서 창작동화의 개척자는 덴마크의 안데르센을 친다. 그의 동화에서 따온 코페하겐의 「인어공주」상은 덴마크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된 관광의 명물이다. 퓨넨섬의 오덴세에 있는 생가에는 그의 동화를 읽으며 자란 세계 각국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마을의 안데르센 공원에서는 동화 「야생의 백조」상을 볼 수 있다.

「피노키오의 모험」은 고향이 이탈리아의 콜로디 마을이다. 이 동화의 작자 콜로디는 외가가 있던 이 마을 이름을 자기 필명으로 삼았고 그래서 이 마을은 피노키오의 본적지처럼 되어 버렸다. 피렌체 서쪽에 있는 인구 3천의 조그만 콜로디 마을은 한낱 나무인형에 불과한 피노키오가 먹여살린다. 1956년에 개장된 피노키오 공원에는 이 동화 한권이 각종 모형과 모자이크 그림과 조각상으로 다 들어있다.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는 빌헬름 텔이나 페스탈로치와 함께 스위스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취리히에는 이 동화의 작가인 슈피리의 기념관이 있지만 그보다는 동화의 주인공 하이디가 살던 마이엔페르트 마을이 명소다. 스위스 동단의 외진 마이엔페르트는 인구가 불과 1천6백명 정도의 한촌인에도 숲 가운데 있는 하이디의 석상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로 붐빈다.

영국에는 「피터 팬」이 있다. 작자 배리경이 애견 뉴펀들랜드 개를 데리고 즐겨 산보하던 런던의 켄징터 공원에서는 피터 팬의 동상이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영국 서남단의 콜월주에 있는 폴머드는 배리경이 「피터 팬」을 쓴 곳이고 그의 시골집 뒤편 숲에 이 작품에 「나나」로 등장하는 애견이 묻혀있어 어느 명사의 묘소보다 참배객이 많다. 지난 3월 영국의 한 경매회사는 배리경이 한 친구의 다섯살짜리 아들을 피터 팬의 모델로 삼았다고 주장하며 그것을 증명하는 앨범을 경매에 내놓아 화제였다.

「빨간머리 앤」은 캐나다의 소녀 캐나다 동남부 세인트 로렌스만에 위치한 프린스 에드워드섬,배를 타고 건너야 하는 이 섬이 연중 관광객으로 득실대는 것은 머리카락이 빨갛고 얼굴은 주근깨 투성이인 고아소녀 앤을 찾아오기 때문이다. 섬의 주도인 샬로트타운은 동화의 작자인 루시 몽고메리가 자란 곳이고 앤의 이야기는 자신의 이야기다. 「앤의 집」은 바로 작자가 자란 집이다.

이렇게 세계 어디를 가나 명작의 동화있는 곳에 운집이 있다. 동화는 화석이 되어 불멸하고 그 동화로 자란 동심은 어린이 되어도 늙지 않은채 동화의 본향을 찾아 모여든다.

『내 인생은 한편의 동화다』라고 안데르센은 말했다. 한 인생이 동화이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동화에 젖어있지 않으면 안된다. 동화는 꿈과 상상력과 진실과 지혜를 키운다. 우리나라의 기성세대는 동화를 잃은 세대다. 어릴 때 한가로이 동화를 읽으면서 자랄 수 있는 시대상황이 아니었다. 그 결과 오늘 파헤쳐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부정과 비리가 진애처럼 쌓여져왔다. 한국병은 동화실조의 산물이다. 사람들은 정의의 주소도 모르고 꿈의 빛깔도 모른다.

새로운 세대에게 새로운 나라를 맡기려면 동화의 나라부터 건설해야 한다. 본래 동화란 이상의 세계만들기를 어린이에게 기대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동화책을 읽는데서 그칠 것이 아니다. 동화의 공원을 꾸미는 것이다. 우리나라 전래동화에도 공원에 모형으로 내세울 수 있는 주인공이나 장면들은 수없이 있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반드시 어린이날 아니더라도 찾아갈 뿐 아니라 어린이 아닌 사람이 순정을 잃을 때 동심을 확인하기 위해서도 찾아갈 동화의 큰 동산이 우리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본사 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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