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병」 해소보다 오히려 교육혼선/수능·내신·본고사등 기준 오락가락/불법고액과외·편파수업 부작용만불법 고액과외 등 과열입시의 부작용을 해소하고 고교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94학년도부터 시행키로 한 새로운 대학입시제도가 벌써부터 많은 부작용과 시행착오를 일으키고 있어 수험생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대학에 학생선발권을 돌려준다는 차원에서 도입된 대학별고사는 당초 국어 영어 수학과목을 배제키로 했으나 서울대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변별력이 없다는 이유로 이들 과목을 채택,다른 대학들도 답습하면서 수험생들에게 이중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그러나 지난달 30일까지 교육부가 전국 1백38개 대학의 대학별고사 실시여부를 집계한 결과,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9개 대학을 제외한 대학들은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내신성적만으로 신입생을 선발키로 최종확정했다.
이같이 대학별고사를 시행하는 대학이 크게 줄어든 것은 수험생들의 부담을 줄여주려는 대학측의 배려뿐 아니라 출제와 채점 등 입시관리에 대한 노하우가 없는 대학들이 입시부정의 소지를 아예 없애려는 의도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고교 내신성적을 현행 30% 이상 반영에서 40% 이상으로 확대한 것도 취지는 좋으나 현시점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지역간 학교간 남녀간 학군간 학생들의 실력차 등을 감안하지 않은 현행 내신제는 상대평가이므로 고교교육에 대한 정확한 평가자료가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내신성적을 확대반영하기에 앞서 학교별 학년별로 학생들의 개인학력을 정확히 평가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현행 학력고사 대신 8월과 11월 두차례 실시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경우도 국립교육평가원이 수험생들을 상대로 7차례 실험평가를 했으나 많은 수험생들은 아직도 이 시험에 대한 정확한 개념파악 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과정은 암기식 위주로 돼 있는데 이 시험은 종합적이고 고차원적인 사고능력 등을 요구하고 있어 많은 수험생들이 갈피를 못잡고 있다. 또 대학수학능력시험을 계열별로 실시하지 않아 고교현장에서는 각종 부작용이 일고 있다. 이과반 학생이 내신성적을 높게 받기 위해 문과반으로 옮기는가 하면 남녀공학의 여학생들은 내신산출이 불합리하다며 남학생들과의 혼합평가를 교육부 등에 건의하는 등 말썽이 잇달고 있다.
서울고 배규섭교사(51)는 『학교마다 독서를 장려하는 등 종전과 다른 학습방법을 시도하고 있으나 아직 통합교과식 출제에 적합한 효과적 학습방법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고 고충을 털어놓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현실적 문제를 분석한 「대학수학능력시험 연구」라는 보고서를 준비중인 경성고 진장춘교사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우선 7차에 걸친 모의평가를 거치는 동안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난이도가 너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됨에 따라 종합적인 사고력을 측정하기 위해 통합교과식 출제방식을 도입했던 당초의 취지와 달리 문제유형이 점차 종전의 학력고사 형태로 변질됐다. 총점이 3백40점(체력장 20점 포함)이었던 학력고사에 비해 수학능력시험의 만점은 2백점이라 변별력이 반으로 줄어든 점도 문제다. 탈교과서적 출제의 비중이 너무 커 학습에 대한 평가보다 IQ테스트가 되기 쉬운 결함을 지니고 있다.
내신성적의 반영률을 높인 것은 장기적으로 서울 강남 8학군 등 특수학군의 문제를 해소하고 고교수업의 정상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엄연히 존재하는 지역간 학교간 학력차를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내신등급을 부여하도록 함으로써 일부 학부모들의 강한 반발을 사고있다. 진명여고의 임덕준교사(33)는 『내신성적반영률을 40% 이상으로 높인데 대해 원칙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이지만 「교육여건의 불평등해소」라는 명분으로 내신등급을 획일적으로 적용토록 한 점은 정책적 고려에 의해 교육평가의 타당성을 희생시켰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고 지적한다.
일부 학부모들은 내신성적의 이같은 결함을 시정해 달라는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최근 서울 구정고의 2학년15반 여학생 학부모들은 교육부 서울시교육청 등에 『남녀공학 고교의 여학생들은 여고의 학생들에 비해 내신성적 취득에서 심각한 불이익을 받고 있다』며 시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했다.
교육계에선 학부모들의 주장에 일부 타당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으나 이들을 위해 내신성적 산출방식을 변경할 경우 이에 반대하는 또 다른 민원이 야기되면서 전체적으로 더 큰 혼란이 빚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교육부는 『현행 내신성적 산출방법은 남녀공학뿐만 아니라 도시와 농촌,고교 평준화지역과 비평준화지역 등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각양각색의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주장을 수렴해 도출해 낸 최대공약수』임을 강조하며 『한번 정한 원칙을 바꿀 경우 연쇄적인 발발이 예상되기 때문에 내신성적 산출방식의 변경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서울대 연·고대 등 9개 대학이 실시하는 대학별고사도 많은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의 허경철 연구위원(47)은 『대학별고사는 내신성적과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전공과 관련있는 1∼2개 과목만을 치르기로 했으나 각 대학이 편의적인 발상에 따라 국어 영어 수학 등 도구과목 중심으로 시험을 치르기로 결정,도입취지가 변질됐다』고 지적한다.
또 대학별고사를 실시하기로 최종 결정한 대학이 당초 38개 대학에서 9개 대학으로 격감함에 따라 수험생들의 지망학교 선택 및 수험준비에 극심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지난해 서강대 경제학과를 지망했다 낙방한 재수생 김모군(19)은 상반기에 대학수학능력시험 준비를 마치고 하반기에는 대학별고사 준비에 치중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가 심각한 혼란에 빠져 있다. 지원상황을 지켜보며 한양대 응시까지 고려하겠다는 생각으로 수험준비 전략을 짰는데 최근 한양대가 대학별고사를 실시하지 않기로 확정,발표했기 때문이다. 김군은 따라서 연·고대를 목표로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대학별고사 준비를 병행할 것인지 아니면 아예 대학별고사 준비를 포기하고 대학수학능력시험 준비만을 할 것인지 망설이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다수 수험생들이 이런 고민에 싸여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내신성적 대학별고사를 골격으로 한 새 대학입시제도가 이처럼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지만 일선고교 교사와 교육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새 제도가 고교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할 것이라는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한다. 교육부도 새 대학입시제도가 부분적으로 문제점을 지니고 있음을 시인하면서도 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않을 방침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새 대학입시제도는 지난 85년 대통령직속 교육개혁심의회에서 대학입시제도 개선을 건의한 이래 7년간의 연구와 검토끝에 91년 4월 확정한 것이다. 이처럼 오랜 시간을 들여 마련한 대학입시제도를 한번도 실시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시 바꿀 경우 앞으로 어떤 대학입시제도도 제대로 정착될 수 없을 것이라는게 교육부의 입장이다.
이천수 교육부차관은 『현단계에서 새 대학입시제도의 근본적인 변경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다만 올해 실시결과를 면밀하게 검토,큰 틀 속에서 부분적인 문제점을 개선,보완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8월20일 실시될 1차 대학수학능력시험을 3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제도자체의 변경을 논의할 경우 각자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학부모와 교육관계자들 사이에 결론 없는 소모적 논쟁을 야기함으로써 혼란만 심화시킬 것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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