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민자당 대표는 4월29일 국회 본회의 대표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김대중 전 민주당 대표는 과거 30여년동안 민주발전에 헌신한 분으로서 용공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상대당인 민주당 또한 결코 용공일 수 없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일부의 오해가 야기된데 대해 당대표로서 유감으로 생각한다. 다시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용공음해」에 대한 그의 유감표시는 예고된 것이었고,놀랄만한 내용도 아니다. 그러나 5·16 군사혁명의 핵심인물로 중앙정보부를 창설했던 그가 문민시대의 첫 국회연설에서 『김대중씨와 민주당은 용공일 수 없다… 다시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연설하는 장면은 우리에게 깊은 감회를 불러일으킨다.
지난 시절 중앙정보부는 온국민의 가슴을 얼어붙게 하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중앙정보부는 대북·대외 정보기관으로서의 본분을 벗어나서 초법적으로 국민위에 군림했다. 정치공작과 용공음해는 그들의 주특기였다. 북한과 연결된듯한 그림자만 봐도 온국민이 소스라치게 놀랐던 것은 「용공」의 공포 때문이었다. 한번 용공혐의를 받은 사람은 대부분 재기할 수 없었다. 그 혐의가 진실이든 아니든 무조건 온국민이 그를 기피하고 위험시했기 때문이다. 독재에 맞서 민주투쟁을 하는 사람들을 확실하게 국민으로부터 격리시키는 방법은 용공의 낙인을 찍는 것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김대중씨는 오랜 용공음해의 후유증을 끝내 이겨내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이 「김대중 지지」를 표명했는데,그는 이와관련된 질문을 받고 『북한이 만일 나에 대한 지지를 밝혔다면 그것은 나를 확실하게 낙선시키려는 음모일 뿐이다. 우리 국민의 반공의식이 얼마나 뿌리 깊은데,북한이 미는 후보가 당선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대선과정에서 민주당과 재야세력의 연대를 민자당이 「북과 연결된 용공세력과의 연대」라고 공격한 것에 대해 민주당이 끝내 용서하지 않고 사과를 받아낸 것은 그만큼 용공에 맺힌 한이 깊기 때문이다. 김종필대표의 용공음해 사과를 국민에게 확실히보이려고 민주당이 TV 생중계를 요구하는 소동을 벌였던 것도 이해할만하다.
김종필대표는 지난 2월 대통령 취임식 직전에도 용공음해 사과를 시도했으나,애매모호한 유감표시로 민주당을 분노케하여 민주당 의원들이 대통령 취임식에 불참하는 소동을 빚었다. 그때 그는 『선거라는 상황에서 진의가 아닌 어떤 발언에 감정적으로 훼손당했다면 이는 우리의 본의가 아니었고,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매우 구차한 사과를 했다.
그는 이번에 분명하게 사과했고,민주당도 그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초대 중앙정보부장이던 그가 TV로 생중계되는 국회연설에서 문민시대의 여당 대표로 용공음해 사과를 모습은 보기 거북했으나,국민에게 어떤 확신을 갖게 했다. 그것은 지난 대선에서의 용공음해가 우리 정치사에서 「마지막 용공음해」였다는 확신이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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