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석영씨(50)가 귀국하던 27일의 공항에는 1백명의 취재진이 몰려 새삼 그의 귀국이 커다란 「사건」임을 실감케했다. 송영씨 등 작가회의소속 문인 1백여명이 마중나온 것도 그가 큰 소설가임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국가안전기획부는 그가 정상적인 입국절차를 밟고 들어올 수 있도록 했으며,기자들의 취재와 가족상봉까지 허용했다.민족문학작가회의(회장 신경림)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상임의장 염무웅)은 이날 「작가 황석영의 귀국을 환영한다」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했고,조국통일 범민족연합 해외본부(의장 윤이상)는 『새로운 문민정부가 황씨의 귀국을 국민화합의 차원에서 대처할 것을 당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공항에 몰린 기자들에게 『정치·사회변화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변했다. 김영삼정부의 개혁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의 귀국은 같은 방북인사인 문익환목사나 임수경양의 경우와는 다른 느낌을 갖게 한다. 그는 어쨌든 「장길산」 「삼포가는 길」 등 걸작을 쓴 소설가이다. 아직도 많은 문학도들이 그의 작품을 필사해가며 소설가의 꿈을 키운다. 대학에서 그의 작품을 텍스트로 사용한지는 오래다.
그러나 그는 문 목사나 임양과 같이 재판정에 서서 방북의 정당성을 떳떳하게 이야기하지 못했다. 공안한파,더 나아가 법을 피해 4년동안 일본 독일 미국을 떠돌면서 분단시대 지식인의 슬픈 유랑만을 보여줬다. 더구나 해외에서나마 그의 명성에 값하는 특별한 활동을 하지도 못했다. 처음 공항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긴장돼 있었다. 그러나 곧 그는 예의 여유있는 미소를 보여주었다. 어쩌면 그를 사랑하는 독자는 처음부터 그런 미소를 원했을 것이다. 즉 그는 이제 큰소설가다운 면모를 법정에서 보여줘야할 차례인 것이다.
그의 방북이 실제로 민간교류의 중요성을 드러낸 것인지,아니면 공안한파만을 불러온 것인지는 후에 평가가 날 것이다. 독자는 이제 북녘땅을 실제로 경험한 그가 「민족문학에 남을만한 작품」을 쓰기 바랄 뿐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