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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시대의 야당/이문희(화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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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시대의 야당/이문희(화요칼럼)

입력
1993.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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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의 모습이 안타깝다. 스스로 씩씩하게 개혁에 나가는 여당을 둔 야당의 입장이란 어렵기 마련이지만 이렇게 꼼짝도 못한다는건 그 정도가 지나치다.보궐선거에서의 완패는 그 작은 실례일 뿐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여러상황들이 점차 야당의 존재의미를 희석시켜 나가고 있는데도 우리의 야당은 변신할줄 모른다. 민주정치의 요체가 견제와 균형에 있다면 이것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야당무위에 실망

개혁이란 충격적인 파도가 근 두달째 우리 사회를 휩쓰는 것을 보면서 야당이 여기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기다려봤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결과는 무위였다. 무위만이 아니라 상황인식마저 철저히 부족돼 있는 느낌이다. 부산은 제껴놓고라도 광명의 공천과정에서부터 보인 구태적 대응이라든가,선거가 끝나고 들고 나온 관권 비난,임시국회 운영시비 등이 하나도 새롭지 못하다. 야당이라는 재래식 그물을 쳐놓고 새로운 여가 그 속에 걸려들기를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것이 차질의 시발이다.

민주당이 이 시점에서 시급히 바꿔야할 것은 그들이 상대하고 있는 여당이 그전의 그 여당이 아니라는 점이다. 얼굴은 민자당이되 민정,민주,공화가 적당히 섞인 그런 당이 아니라 재야까지를 흡수한 전혀 새로운 당이다. 의식도 다르고 몸체의 크기도 다르다. 그들의 개혁프로그램은 90%라는 미증유의 지지를 받고 있다. 민주당의 대여 전략은 의당 이런것을 인정하는 바탕위에서 시작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김영삼 개혁이 막 시작된후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지는 그가 트로이 목마식 개혁을 하고 있다고 보도한 일이 있다. 사실 90년 1월22일 3당 합당을 발표하던 노태우대통령 옆에 「열중쉬어」 자세로 서있던 김영삼 당시 민주당 총재가 이타카의 왕 유리시즈이리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불치의 대통령병」 때문에 끝내는 타도해야할 대상과 악수까지 했다는 비난이 더 많았다. 「구국의 결단」이라는 3당 합당이 야당의 비난의 표적이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민주당 지분」이라는 목마속에 개혁의 첨병들을 숨기고 들어가 「난공불락의 트로이성」을 함락시켰다. 30여년의 집권세력을 와해시킨 것이다.

내외의 상황이 격변하는 것과 함께 정치를 보는 눈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매우 사활적으로 생각했던 시각에서 다분히 생활적인 것으로 바뀌고 있다. 명분의 대상에서 이해의 대상으로 바뀌고 있다. 여야를 보는 개념도 선과 악,반대와 찬성,민주와 반민주의 종래의 고정적 도식에서 벗어나고 있다. 선택들이 매우 유연하다.

○지금은 개혁시즌

그런데 이에 대한 의식전환이 우리의 야당에선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새지도부가 들어서고 전열을 가다듬는다고 하면서도 95석의 야당이 완전히 무력화되어 있는 것은 그들의 행동과 대응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관심의 핵심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개혁의 시즌이다. 온나라의 주제가 여기에 모아져 있다. 공직자의 재산공개에 이어 교육·금융비리,군인사부정 등이 너무나 엄청난 과거의 적폐들이 하나하나 파헤쳐지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6공에서 5공,3공에 이르는 뿌리깊은 이 나라의 부조리의 원천이 모두 드러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모두가 원하는 일이지만 우리 사회,우리 생활에 줄 충격때문에 두려움과 걱정도 많은 시점이다.

여기에 야당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 개혁을 「시비하고 다리를 잡아당기는 식」이 아니라 이 대규모 척결작업이 핵심을 건드리고 있는지,얼버무리는 일은 없는지,인민재판식은 아닌지에서부터 형평성은 유지되고 있는지,그 방법과 절차는 적법한지에 이르기까지 개혁의 엄정한 모니터와 조언자로서 할 일은 너무나 많다고 본다.

지금 일련의 척결작업은 90%의 지지를 받고 있음에도 법적 뒷받침을 채 갖추지 못했다는 중대한 흠을 갖고 있다. 초법적 조치나 정치적 결단은 개혁의 초기단계에선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그 마무리는 결코 법과 제도의 부재상태에서 원만히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법제화,제도화는 이 척결작업이 정권교체기의 일과성 돌풍으로 끝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야당이 정치생명을 걸고 나서서 「정당한 노력」이 도매금으로 매도되는 일은 없는지,개혁의 억울한 피해자는 없는지 눈을 부릅뜨고 봐줘야 한다. 어떤 경우로도 개혁의 낙오자가 돼선 안되겠다.

이번 국회는 그런 의미에서 야당에 더 의미가 있다. 공연한 시비로 허송할 것이 아니라 개혁이 제도로서 자리잡게 하는데 한몫을 단단히 해야 한다. 「어느 정부도 강력한 야당없이 내내 무사할 수 없다」는 영국 정치가 벤저민 디즈레일리의 말은 우리의 야당이 더 새길 필요가 있다.<본사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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