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미술대전이 올부터 비구상과 구상계열로 나뉘어 그 제1부(비구상)가 내일 4월27일부터 5월16일까지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한국화,서양화,판화,조각의 4개 부문을 통틀어 최우수작에 주어지는 대상이 올해부터 신설되어 30대초의 젊은작가 고경호씨의 조각작품 「막스 프리슈와의 대화」가 선정되었다. 수상작은 신문에 실린 사진으로만 보아도 단일체의 조각품이 아니고 구상성있는 여러 대상물의 복합배열이어서 특이하다. 작가와 동행하여 작품의 실물앞에 서 본다.「막스 프리슈와의 대화」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길 오른쪽 가에 노천으로 전시되어 있다. 화강암의 받침대위에 아주 장식적인 아이보리색 의자가 실물크기로 놓였고 의자위에는 청색천이 무슨 상자같이 모난 것을 덮은채 바닥까지 늘어뜨려졌다. 곁에는 축소된 오벨리스크 기둥이 시종처럼 지키고 섰다. 배면은 어깨가 무너진 벽이 바람막이처럼 둘러쌌다. 의자와 천은 재료가 브론즈요 오벨리스크는 철이며 벽의 벽돌부분은 테라코타다. 다소 추상화시킨 벽면외는 오브제들이 실물모양대로다.
이 작품을 대하면 언뜻 하나의 자그만 무대장치같은 인상을 준다. 세트와 소도구의 집합이다. 곧 무슨 드라마가 전개될 것 같다. 반드시 극작가인 막스 프리슈의 이름을 빌려와서가 아니다. 시공을 넘어선 물체들 사이의 공간이 긴장을 고조시킨다. 이질적인 질료들의 대결과 화해가 벌써 극적이다. 기다려지는 주인공은 시간일는지 모른다.
작가에게 작의를 들어본다.
『20대초에 연극에 관심을 가졌다가 막스 프리슈를 발견했다. 그의 희곡 「만리장성」은 여러시대의 역사적 인물들이 시공을 뛰어넘어 한곳에 등장하는 구성이 독특했다. 이 극의 실질적 주인공은 민중이었다. 내가 우리나라 민중예술에 가지고 있는 회의는 미술의 본래적 순수성이 약하고 너무 직설적이라는 것이며 기성체제 작가들에 대한 불만은 순수 조형적인 측면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나는 조형적인 형식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일반 대중과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으로 내용을 담으려고 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 혼란했을 때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공감했던 상황들을 대변해보고 싶었다. 오벨리스크나 의자는 고대의 왕권이나 현대의 절대권력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겠고 벽은 한계상황의 표현이면서 카타콤으로 생각해도 좋다. 과거에 숨어서 예배보던 사람들이 지금은 새대가 바뀌어서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역사의 아이러니와 패러독스를 이야기 해보려고 했다. 역사는 바뀌는 것이고 절대적인 힘이란 영속하지 않는다는 내 나름의 비판의식에서다. 평범한 사람들의 정치적 스트레스 해소가 작품의 출발점이지만 내 뜻과는 상관없이 보는 사람이 자유롭게 저마다 생각하도록 내버려두고 싶다』
2차대전후의 스위스 문학을 대표하는 극작가겸 소설가인 막스 프리슈는 『다른 사람 눈에 나쁜 스위스 사람으로 생각되어질 수 있는 한에서만 스위스인이고 싶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대담한 스위스 비판의 작품을 쓴 작가다. 특히 그의 희곡은 대중을 분노시키고 생각하게하고 즐겁게 한다. 그런 요소가 「막스 프리슈와의 대화」속에 있다.
이 작품은 제작양식이 반드시 새로운 것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개성적이다. 일견 설치미술 같아 보이면서도 어디까지나 조각이다. 시갈이 선고액을 일체에 부어서 인간모형을 만들어서는 실물의 정치와 배치시키는 작업과도 또 다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올봄의 대한민국 미술대상 수상작이 관심을 끄는 것은 대중과의 거리다. 추상미술을 일반대중에게 접근시키려는 의지가 두드러진다. 이 조각은 아무나 쉽게 다가서게 한다. 일상적인 의자가 먼저 끌어당긴다. 그 위에 놓인 천에서 무슨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유혹이 느껴진다. 천이 덮은 상자속에 무엇이 들었을까. 물론 작가 자신도 모른다. 관객은 자기 마음대로 그속에 무엇이든 집어넣을 수가 있다. 작의는 작가의 것이요 감상은 관객의 것이다. 이런 점이 이 작품을 보는 재미요 추상미술에 문외한인 사람도 불러들일 수 있는 매력이다. 미술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다가서는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작가 자신도 『앞으로 미술에 관심이 덜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앙리 마티스는 「육체적 피로를 풀어주는 안락의자같은 예술」이 그의 지향점이었다. 「막스 프리슈와의 대화」에 나오는 의자는 그런 안락의자의 구실을 한다.
이런 뜻에서 이 작품은 현대미술이 대중과 가장 친한 관계에 있었던 팝 아트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라고 할만하다. 팝 아트의 주장은 대중을 현대미술에 몰이해한 계급으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되고 엘리트연하는 현대예술과 대중은 화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작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의 관람객은 20일동안 총 3천명에 지나지 않았다. 음악회 한회분의 관객수밖에 안된다. 과천이 멀다한다. 그보다 더 먼 것이 우리 일반대중들의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다.
현대미술은 험한 산꼭대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 화창한 봄날 교외 산보로의 길가에 있다. 이것이 「막스 프리슈와의 대화」가 외치는 소리다.<본사 상임고문·논설위원>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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