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대상·의도 없다”/투서·제보 수사해보면 “줄줄이”/개혁차원 성역없이 처벌 원칙사정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치고 있다. 공직자사회는 물론 정계도 연제 불똥이 튈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새정부의 개혁은 곧 사정으로 인식될 정도이다.
김영삼대통령은 『부정부패척결없이는 경제회생도 이룩할 수 없고 국가기강도 되찾을 수 없다』고 했다.
김 대통령은 24일에도 제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변화와 개혁의 추진에 따라 한국병의 정체가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면서 『당장 아프고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이를 덮어둔다면 나라전체가 썩어버리게 된다』며 성역없는 사정활동을 거듭 강조했다.
사정의 끝은 어디인가. 사정의 칼날은 어디까지를 겨누고 있는가.
김 대통령의 말을 음미해보면 사정활동은 결코 시간을 정해놓고 진행되는게 아니다. 오히려 중단없는 사정이란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각 사정기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이고 있는 비리수사 등 사정활동은 계획된 프로그램에 의해 예정된 코스로 가고 있는 것인가.
「개혁의 산실」로 사정의 키를 쥐고 있는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의 얘기대로라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주돈식 정무수석은 이와 관련해 『정치인이든 누구든 면죄부를 가지지 않았고 그렇다고 누구를 찍어서 방향을 정해놓고 수사하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사정의 지휘탑인 김영수 민정수석도 오래전부터 같은 뜻의 말을 해왔다.
어떤 특정사건이 터져 캐들어 가다보면 정치이든 전·현직 고위공직자이든 관련비리가 드러날 수 있고 이 경우 「성역없이」 상응한 처벌을 한다는게 기본원칙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거꾸로 대상을 정해놓고 비리캐기 수사를 벌이는 일은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들은 얼마전 의원과 전직장관 등 10여명에 대한 비리 내사설이 터졌을 때도 똑같은 얘기를 했다. 새정부에 밉보인 사람들만 골라 비리를 내사하는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최근 『당시 거론된 내사 대상중 검찰에 소환된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느냐』고 반문했다.
말하자면 기획 사정이니 기획수사니 하는 구시대의 「관행」은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개혁프로그램에 따라 사정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듯한 「증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경원대 입시부정사건 수사가 진행중일 때 이경재 공보수석은 『개혁프로그램으로 재산공개,사이비언론 비리,사학 비리척결이 계획돼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산공개와 언론비리척결은 계획대로 진행된 것이지만 경원대 사건수사가 반드시 개혁프로그램에 의해 착수된 것은 아니었다.
다른 고위관계자도 새정부 출범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공무원인사 청탁비리,민간기업의 하도급비리,정부부처 및 기관의 물자구매 및 하도급 비리에 대한 척결작업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었다. 지금 진행중인 김종호 전 해군 참모총장의 인사비리수사가 바로 이 관계자가 말한 인사청탁 비리척결의 한 일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청와대는 언론의 비리폭로 보도가 예정돼있는 것을 안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각 사정기관의 활동이 활발히 벌어져 묘하게도 각분야의 비리가 돌아가며 드러나고 있는 것도 계획된 프로그램에 의해 사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다. 감사원과 검찰,경찰 등이 경쟁적으로 사정활동에 나서고 있고 청와대가 과거와 달리 이를 「통제밖」에 두는 것도 고도의 사정계획 프로그램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청와대는 접수되는 기명투서와 제보는 어김없이 해당 사정기관에 내려보내고 있다.
실은 「사정계획표」가 있느냐 없느냐는 크게 중요한게 아니다. 청와대 관계자들이 밝히고 있는 사정원칙이 오히려 더 무서운 말이다.
대상이나 방향을 정해놓은 것은 아니지만 드러난 비리에 대해서는 「성역없이」 「가차없이」 처벌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정부 출범이후 청와대를 비롯,각 사정기관에 투서와 제보가 쏟아지고 있고 사정기관의 내사활동도 활발하기 때문에 언제 어느 사건이 터져 연루정치인이나 전·현직 고위공직자가 사정의 칼날에 쓰러질지 모른다. 과거정권에서 「위세」를 부리던 사람들은 설령 「목적타」의 대상은 아니라해도 터진 비리사건에 연루될 개연성이 클 수 밖에 없다.
청와대의 한 수석비서관은 이렇게 말했다. 『6공때도 법과 제도의 개혁은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때 개혁이 이뤄졌다고 보지 않는다. 결국 개혁은 사람,그것도 전·현직 고위직이 대상이 돼야 한다』 사정이 김 대통령의 의지대로 계속될 것임을 분명히 하는 말이다.<최규식기자>최규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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