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대통령이 빠른 속도로 개혁을 추진하면서 시민운동단체와 재야운동권에서 정부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민주당은 정부와 손잡는 재야인사들을 쓰라린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고,『재야의 배신자들을 역사가 심판할 것』이라는 박지원대변인의 극단적인 공격까지 나왔다.87년 부천서에서 성고문을 당하고 그 사건을 폭로하는 과정에서 온갖 어려움을 격었던 권인숙씨는 그 무렵 인터뷰에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운동가란 좋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입니다. 이상과 꿈이 없다면 누구도 그 험난한 길을 걷지 못할 것입니다.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분들께 내가 오히려 미소지을 수 있는 것은 내가 운동가이기 때문입니다』
직업적인 정치꾼들이 주도하던 정치,타성에 젖은 관료들이 이끌어가던 행정에 「운동가」들이 합류하고 있다는 것은 일단 환영할 일이다. 그들은 온갖 어려움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좋은 세상」을 향한 꿈과 이상을 어떤 식으로든 펼치려고 노력할 것이다. 혁명도 정권교체도 아닌 정부이양의 수준에서 이런 현상이 오리라고 예상했던 사람들은 거의 없다. 재야 일부에는 김영삼정부의 탄생배경이 수구세력이라는 점을 일깨우면서 성급한 합류를 경계하는 시각도 있으나 『김영삼 개혁을 확실하게 밀어서 수구세력의 저항을 막아야 한다』는 개혁과 합류파의 주장이 현재로서는 좀더 설득력을 갖고 있다.
김 대통령이 취임 한두달만에 청춘스타 최진실의 인기를 뛰어넘어 「스타중의 스타」로 부상하고 있는 세찬 변혁의 와중에서 야당이 얼마나 초조할 것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야당의 좁아진 입지를 생각하면 오히려 국민이 더 초조할 지경이다. 대통령이 강력해질수록 야당도 강력해져야 할텐데,야당은 요즘 강력해질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민주당은 초조함을 떨쳐버리고 차근차근 거듭나야 한다. 국민이 신물을 내던 직업적인 정치꾼들의 시대가 와해되고 있음을 깨닫고,구태의연한 야당의 옷을 벗어 「개혁강물」에 던져야 한다. 재야인사가 정부로 가는 것은 변절이고 배신이라는 논리는 이제 설득력이 없다. 민주당은 위기에 빠져있다. 민주당의 입지는 더이상 좁아질 수 없을만큼 좁고,인기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은 「스타중의 스타」에게 열광하느라고 야당 정도는 안중에도 없다. 민주당이 소리질러도,비명을 울려도,통곡을 해도 국민의 귀에는 잘 안들린다.
그러나 위기란 동시에 기회다. 희망은 절망속에서 잘 보인다. 민주당의 희망은 야당의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공직자윤리법·정치자금법·국가보안법 등 발등에 떨어진 과제만도 하나 둘이 아니다. 대통령이 바람몰이 개혁으로 갈수록 야당은 법적·제도적 개혁을 착실하게 추진하면서 국민속에 신뢰를 심어야 한다. 대통령이 개혁을 앞지르니 야당이 무슨 일을 하겠는가라는 탄식이야말로 구태의연한 것이다. 민주당은 스스로 꿈과 이상을 가진 정당으로 거급나려고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길만이 민주당의 살 길이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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