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도 오래 고이다보면 썩게 마련이다. 엄정한 규율과 사명감의 화신이어야할 군도 예외가 아니었음이 드러나 무척 놀랍고 실망스럽다. 군이 누구인가. 흔히 목숨을 던져 나라를 지키는 간성이요,화랑과 충무공의 후예라는 자부심으로 뭉친 특수집단이라 한다. 그러나 국민의 눈으로 보면 막대한 국고와 국민의 세금으로 육성·유지되어온 국토방위 임무와 봉사집단에 다름 아니다.그런 군이 최근 터져나온 전직 해군 참모총장의 엄청난 진급 비리사건에서 드러났듯 정상에서부터 썩어 있었으니 이런 변고와 나라배신이 또 달리 있을까 싶다. 역사적으로 봐도 군이 제 몫을 다해내지 못하고 썩으면 나라가 망한다. 기강이 해이되고 사기가 떨어져 제 역할을 못하고 보면 외적 앞에서 나라를 지킬 사람이 없어지는 망국의 위기가 닥치는 것이다.
군이 왜 이렇게 됐는가는 누구에게나 자명하다. 지난 30여년간 잦은 쿠데타와 권위주의 정권창출의 모체·배경노릇을 하며 봉사자에서 벗어나 온갖 특혜의 지배계층으로 군림해왔기 때문이다. 권력의 비호아래 사병화의 길을 달리면서 지연·학연·인연이 인사때마다 춤을 췄고 사회의 황금만능 풍조도 스며들면서 「금록」마저 횡행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껏 군의 정상권의 비리·부정은 사정의 손길이 잘 미치지 않는 성역이었다. 국민과 군을 이간시키고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명목을 내세워 비리를 덮어온 것은 군이야말로 정통성없는 권력의 기반이었기 때문이다. 그처럼 고였던 물이고 보면 썩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다.
아직도 이번 사건이 김종호 전 총장의 개인적 돌출비리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누구나 간절하다. 그같은 바람은 그동안 권력의 귀여움도 받지 못한채 어려움속에서 묵묵히 임무를 수행해온 많은 우리 젊은이들의 아픈 가슴을 생각해서이다. 또 나라지키기의 최후 보루마저 썩었다고 인정하기가 싫은 국민적 자존심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국민적 자존심과 배려를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이미 탁류가 흘러 넘친 것 같다. 이미 오래전부터 군인사,특히 장성진급때 거액의 뇌물이 오간다는 소리가 있어왔고,이번 수사로 그 내막이 소상이 드러나고 있다. 김 전 총장의 영관급 진급때 수천만원,장성진급때 1억씩 진급장사를 벌여 「금빨대」라는 별명마저 얻었다면 사태는 이제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해군이 이 지경이었다면 당연히 다른 군의 인사비리에 대해서도 과감한 수술을 할 때이다.
지난 91년 군내부에서 이미 노출됐으나 밖으로 덮여만 왔던 이번 사건이 드러나기에 이른 것도 결국은 우리가 정통성있는 문민시대를 열었기 때문임을 생각하면 감회가 새삼스럽다. 오늘에 와서 묵은 곪집을 헤치는 온갖 역겨움도 상처를 고쳐 새살을 돋게 하는 기쁨에는 못미침을 국민이나 군이 두루 자각,거듭남의 계기로 삼을 때이다.
하늘에 떠있는 초롱초롱한 맑은 별은 군의 상징이다. 사정당국은 군의 명예회복과 거듭남을 위해서라도 한점 의혹없는 철두철미한 수사로 진상을 밝혀내야 한다. 그래야만 먹구름에 가려졌던 별빛이 더욱 영롱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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