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의원들 한마음 참배/시민 “세상 달라졌다” 환영서울 도봉구 수유동 4·19묘역. 유배지처럼 멀리 떨어져 있던 곳. 시내 중심으로부터의 거리 때문은 아니다. 「미완의 혁명」을 두려워하던 사람들이 국민의 가슴에 멀찌감치 떼어놓으려 했을 뿐이다.
19일 4·19묘역은 더이상 유배지가 아니었다. 화사하게 피어난 봄꽃처럼 밝고 밝은 모습이었다. 매캐하던 최루탄 냄새에 대한 기억이 오히려 쑥쓰러울 정도로 이날의 공기는 달랐다. 문민시대의 의미인듯 했다.
현직 대통령이 처음으로 참배를 했대서가 아니라 묘역의 전반적인 분위기 자체가 바뀌었다. 여당의 당직자들이 기념식수를 했고 야당 의원들은 그들만의 전유물이었던 4·19정신을 빼앗길세라 더욱 목청을 돋우었다.
33년만에 「복권」된 4·19 앞에서 여당도 야당도 일반시민도 가벼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빼앗긴 들에 봄이 왔다는 의미만은 아니었다. 미완의 혁명이 지금 다시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 이날의 감흥을 더해주는듯 했다.
○…김영삼대통령이 이날 상오 7시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4·19묘역을 참배하자 묘역 관계자들은 물론 일반참배객도 이구동성으로 『세상이 바뀐 것을 실감하겠다』며 환영의 박수를 보냈다.
참배에 앞서 김 대통령이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며 4·19탑쪽으로 가는 도중 갑자기 한 노인이 튀어나와 경호원들이 바짝 긴장했으나 이 노인은 김 대통령 앞에서 『4·19혁명 만세』를 외쳐 오히려 박수를 받았다. 자신을 「4·19혁명 보답회」 김봉섭회장이라고 밝힌 이 노인은 김 대통령에게 『잘 하셔야 합니다』라고 당부의 인사를 건넸다.
김 대통령은 때마침 도착한 황명수 사무총장 등 민자당 당직자들과도 인사를 나눈뒤 상오 7시20분께 참배객 및 민자당 인사 3백여명의 갈채속에 묘역을 떠났다.
이날 김 대통령의 참배행사에는 경호실의 통제가 그다지 심하지 않아 시민들의 접촉이 비교적 자유스러웠다.
○…민자당 당직자들의 참배는 김 대통령 참배가 끝난뒤 상오 7시30분께부터 시작됐다.
민자당측에선 황 사무총장을 비롯,김종호 정책위 의장 김영구 원내총무 강재섭대변인 백남치 기획조정실장 권해옥 제1사무부총장 등 주요 당직자들과 문정수 이세기 조용직 주양자의원,남재희 양경자 신오철 전 의원,그리고 사무처 부장급 이상 요원 등이 묘역을 찾았다.
그러나 5·16 주체인 김종필대표는 이날 행사에 참석지 않은채 조화만 보내 묘한 뒷맛을 남겼다. 김 대표의 측근인 조용직 부대변인은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지금까지 국립묘지외에는 참배한 적이 없다』고만 설명했다.
민자당 당직자들은 봉안소 분향을 마친뒤 4·19탑 앞에서 기념식수를 했으며 이어 황 총장은 여당으로선 이례적으로 4·19정신을 당무에 반영해달라는 내용의 즉석 연설을 하기도 했다.
황 총장은 『금년에는 대통령께서 4·19혁명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는 등 4·19가 여러 의미에서 재조명되고 있다』면서 『당원 여러분도 4·19정신을 이어받아 당무에 정성을 들여달라』고 당부했다.
○…민주당은 야당답게 4·19탑 앞에서 정식으로 추모식을 가진뒤 묘소를 참배했다. 민주당측은 김 대통령과 민자당의 참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야당의 선명성이 침해받을 것을 우려한듯 『민주당이야말로 4·19정신을 계승한 유일한 정통 야당』임을 강조했다. 요즘 야당의 「위기의식」이 또다시 내비친 상황이었다.
「4·19의 주역」으로 소개받은 이기택대표는 추모사에서 『자유 민주 통일의 4·19정신은 민주당의 이념이 되어 빛을 발하고 있다』면서 『4·19정신을 담보로 민주 정통야당의 혈맥을 잇고 5년뒤 마침내 집권해 혁명의 완수를 보고하겠다는 마음으로 정당원이 하나가 될 것을 다짐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민주당측에선 이 대표를 비롯,김원기 조세형 한광옥 신순범 이부영 권노갑 최고위원과 김덕규 사무총장 이철 이우정 박석무 채영석 장기욱 김병오 김원길 유인태 유인학 이규택 김말룡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에 앞서 국민당도 문창모 박구일의원과 박영록 박한상 전 의원 등이 참배했다.
○…이날 달라진 4·19묘역을 지켜본 사람들은 가슴 뿌듯함과 문민정부에 대한 기대를 함께 털어놓았다.
묘역에 묻힌 고교 동창을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히던 이부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김 대통령이 4·19혁명과 광주민주화운동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려는 것은 개혁의지와 맥을 같이한다고 생각한다』며 『4·19가 미완의 진행형 혁명이었다면 이제는 완성을 위해 정착될 때』라고 말했다.
23년간 4·19묘역 관리직원으로 일해온 강대흥 묘역관리소장(56)은 『매년 만나던 김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 처음 묘역을 찾아 감회가 새롭다』면서 『앞으로는 4·19가 제대로 평가받기를 기대한다』고 소감을 얘기했다.<정광철기자>정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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