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ANC 통제불능/9일 장례식 최대 고비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 지도자 크리스 하니가 지난 10일 암살된후 남아공 전역을 휩쓸고 있는 유혈소요사태가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정부는 물론 넬슨 만델라가 이끄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지도부도 화난 군중들에 대한 통제력을 사실상 상실,남아공은 무정부상태에 가까운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전국적으로 하니의 추도행사가 벌어진 14일 수백만의 흑인들은 각지에서 가두행진을 벌이며 백인들을 공격,경찰과 격렬한 충돌을 빚었다. 데 클레르크 대통령은 이날 텔레비전에 나와 소요가 심한 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불법집회 금지와 보안경찰 증강 등 치안유지를 위한 강경책을 발표했다. 또 만델라와의 긴급회동을 요구,사태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한 노력을 병행했다.
하지만 하니의 피살에 격분한 흑인들의 항의시위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군중들은 과격단체들의 주도로 연일 가두시위를 계획하고 있는데 하니의 장례식이 치러지는 19일이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심각성은 정부나 ANC 모두 소요를 진정시킬만한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데 있다. 강경파는 전국 비상사태를 선포해 질서를 유지하라는 압력을 백인정부에 가하고 있지만 지난 80년대의 경험에 비추어 이같은 극약처방이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하기 힘들다. 백인정부와 대화를 통한 정권이양 협상을 벌여온 만델라 등 ANC의 온건지도부 역시 군중을 설득하는데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 온건노선을 견지하며 평화협상을 이끌고 있는 ANC가 지도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것과는 달리 백인정부에 대한 무력투쟁노선을 고수하며 소요를 주도하고 있는 범아프리카회의(PAC)의 발언권이 강화되고 있는 점은 이번 사태뿐 아니라 앞으로의 정치협상 자체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강경파의 영향력이 커질 경우 지금까지 힘들여 만들어낸 합의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남아공정부와 ANC는 내년중 모든 국민이 참가하는 첫 총선거를 실시하고 득표비율에 따라 90년대말까지 흑백정치세력이 권력을 공유하는 대타협을 도출,3백년간 지속된 백인소수 통치와 인종차별에 종지부를 찍기도 한바 있다. 최근의 사태는 이같은 정치일정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조속히 선거일자를 공표하고 더 과감한 정치개혁 청사진을 발표하는 것만이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런던=원인성특파원>런던=원인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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