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가 사정한파로 동결상태라고 한다. 지난 3월 중순 김준협 서울신탁은행과 이병선 보람은행장 등 은행장 2명이 물러난지 1개월도 못돼 이번에는 박기진 제일은행장이 사퇴했다. 은행장 3명의 본의아닌 퇴진은 정치권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온 바닥좁은 금융계를 얼어붙게 하는데 충분한 것이다.때마침 감사원이 은행감독원에 의뢰,국책은행 및 일반은행의 임원 1백14명과 일부 직계가족들의 은행계좌에 대한 조사를 끝내놓고,드러난 의혹이나 비리에 대한 처리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관계장관 등은 처벌대상자가 4명에 불과하며 감사원의 금융계 임원에 대한 집단 사정은 일단 이것으로 끝났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금융계의 불안을 진정시키려는 장관의 의도적인 이러한 발언에도 불구하고 금융계에는 아직 해빙의 기미는 없다는 것이다. 사정한파가 언제 걷힐 것인가. 사정에 대한 공포와 중압감이 무겁기만하다고 한다. 김영삼대통령이 이끌고 있는 국정차원의 사정활동은 지금 금융뿐만 아니라 정부의 중앙 각부처,군,국세청 등 범국가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김 대통령은 사정활동이 일과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추진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금융계에 사정의 바람이 멎지않은 것은 당연하다.
전통적으로 권력과 금력의 지배를 받아온 우리의 금융계는 언제나 어떤 형태로든 정경유착 등 비리에 연루돼왔다. 과거 역대정권의 교체기에도 사정의 바람이 불었고 그 바람은 으레 금융계를 휩쓸고 갔다. 과거에는 불행히도 권력 굳히기형의 사정이었다. 김 대통령의 사정은 경제회생형의 사정으로 돼있다. 우리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도 고질적인 경제성장의 장애요소(부정부패)를 과감히 수술해야 한다』는 김 대통령의 부정부패척결의지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
다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금융기관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금융기관에 맞게 사정을 효율적으로 집행해야겠다는 것이다. 금융기관의 동결상태가 오래간다면 기업의 설비투자 등 당면 경제정책의 최대현안인 불황의 극복에도 지장을 줄 수 있다. 과거에도 사정바람이 불때면 가뜩이나 보수적인 금융기관은 더욱 위축되어 기업의 자금난이 심화되곤 했다.
비단 금융계뿐만이 아니겠지만 심리적인 불안이나 위축을 주는 것은 「물밑사정」이다. 언제 누가 무엇으로 조사되고 있는지 모르는 「물밑사정」은 조사기법상 불가피한 것이라해도 장기화하는 경우 금융기능을 크게 저하시킬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임원들에 대한 집단사정 같은 것은 일단 그 처리방침을 공표,임원들을 불안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리고 사안별 사정은 관례대로 추진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금융계에 대한 집단사정활동이 일단 끝났다면 사정한파가 더이상 오래 지속되게 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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