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돌적 성격의 공수부대 출신/10·26후 전 전 대통령 후원받아민자당 지도부의 의원직 사퇴요구에 반발,재산공개 파문을 조기에 매듭지으려는 새정부 실세들의 바쁜 일정에 딴죽을 걸고 있는 정동호의원은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인물로 소문나 있다.
주변에서 『호탕하다』 『시원시원하다』고 호감을 표시하는 사람들조차도 「격한 성격」에 대한 지적을 빠뜨리지 않을 만큼 그의 강성이미지는 잘 알려져있다.
당지도부의 타협성 요구를 거부하고 정면 대항,사태를 막다른 골목으로 끌고간 것도 그의 불같은 성격 때문이다.
그의 행동성이 세간에 널리 알려진 것은 역시 86년 3월의 이른바 국회 국방위 회식사건. 당시 육사 13기의 선두주자로 육참차장(중장)이던 그는 회현동의 요정 회림서 국방위 소속의원들과 술자리를 함께 했다 사소한 일로 국방위원들과 군인들 사이에 시비가 벌어져 당시 김동영 신민당 총무(작고)와 남재희 민자당 의원이 폭행당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져 화제가 됐던 것.
결국 이 사건으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군복을 벗어야 했으나 예편후에도 특유의 저돌성은 별로 희석되지 않았다고 주위에서는 전하고 있다.
그는 예편후 한국도로공사 사장으로 난공사로 유명했던 중부고속도로 건설을 「하면 된다」는 식으로 밀어붙여 성공했으나 부하직원들의 원성을 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칠고 강한 것에 대한 정 의원의 집착은 남달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산태생으로 마산고를 졸업한 그는 육사시절 럭비선수로 활약했고 임관후 거의 공수부대에서 군인으로 성장했다.
하나회 창립회원으로,또 공수여단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직속상관으로 모신 인연으로 그는 5,6공 핵심세력과 뗄 수 없는 거리에 있었다.
10·26이전 대령으로 청와대 경호실 상황실장으로 지낼 당시 그는 청와대 상황을 보안사에 직보하는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다. 특히 10·26 사건당시 김계원 비서실장의 옷에 묻은 피를 발견하고 나름대로 사태를 파악,박정희대통령 저격소식을 전 당시 보안사령관에게 알렸던 것도 바로 그였다.
79년 다른 육사동기들 보다 한발 늦게 하반기 진급 대상자로 별을 다는 등 결코 13기 선두주자로 부상되지 못했던 그가 10·26이후 급부상한 것도 이런 사연 때문이었다고 군출신 의원들은 밝히고 있다.
정 의원은 10·26후 전 전 대통령의 강력한 후원에 힘입어 최규하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을 맡아 권력 핵심부에 들어갔다. 그후 다시 군으로 되돌아가 사단장 육본인사 참모부장 육본참모차장 등을 지냈다. 국방위 회식사건만 없었어도 대장진급과 육참총장 자리는 떼논 당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3대때 경남 의령 함안에서 민정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돼 원내에 들어와 제도정치권안에서 또 한번의 성공을 겨냥했던 그가 민주계 주도권을 쥔 민자당에서 맞게된 상황은 말 그대로 역사의 반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래선지 의원직 자진사퇴를 권유하러간 육사동기 민태구의원에게 재떨이를 던지려했다는 설도 지나가는 역사의 소품으로 기억될 것이다.<황영식기자>황영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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