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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명문 「거창고」(고교 교육을 살리자: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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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명문 「거창고」(고교 교육을 살리자:8)

입력
1993.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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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정서­직식 전인교육 40년/입시수업보다는 인격함양에 초점/“공부는 학생들 스스로” 분위기 유도/강연회·예술제도 매년 실시… 대학합격률 해마다 높아져「고교교육을 살리자」 시리즈는 지금까지 교육현장에서 드러난 여러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왔다. 이번 회에는 인성교육과 지식교육의 조화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사제가 함께 노력하고 있는 「참교육의 현장」 거창고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지리산과 덕유산 그리고 가야산에 둘러싸인 경남 고창군 고창면은 인구 4만명이 채 안되는 작은 농촌도시다. 이 시골에 참교육을 실천하면서 전국 최고수준의 대학진학률을 자랑하는 학교가 있다. 고창고(교장 도재원·51)가 바로 화재의 명문고.

남녀공학인 이 학교의 올해 졸업생은 모두 2백8명(남자 1백54명,여자 54명). 이중 서울대 7명,연세대 2명,고려대 4명 등 모두 1백96명이 4년제 대학에 합격,94.2%라는 놀라운 진학률을 나타냈다.

올해뿐만 아니라 이 학교는 매년 경이적인 대학진학률을 기록해 왔다. 81년 87.9%를 비롯해 해마다 80%에 가까운 학생들이 4년제 대학에 진학했고,특히 83년에는 서울대에만 22명이 합격했다.

고창고가 명문의 소리를 듣는 이유는 이처럼 높은 대학진학률 때문만은 아니다. 평준화 정책과 입시위주 교육 풍토속에서 찾기힘든 전인교육을 실시하는 점이 이 학교를 진정한 명문으로 만든 요인이다.

고창고는 6·25전쟁의 포연이 채 가시기전인 53년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한 민주시민의 양성」이라는 건학이념을 내걸고 문을 열었다.

이같은 건학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고창고는 정신과 정서 그리고 지식의 조화를 추구하는데 교육의 주안점을 두고 있다. 도재원교장은 『높은 대학진학률은 정신교육과 정서교육에 바탕을 둔 지식교육의 결과일뿐 그 자체가 교육의 목적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학교의 정신교육은 기독교계통 학교의 특성을 살린 예배와 성경시간을 통해 이루어진다. 전교생이 1주일에 2시간씩 성경수업을 받는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스스로 설정한 인생의 목표를 실현할 의지력을 기르는게 예배와 성경수업의 목적』이라고 김선봉교무주임(42)은 설명한다.

학생들의 정신과 의식을 일깨우기위해 이 학교는 또 각계인사를 연사로 초빙,훈화를 듣는 기회를 자주 마련하고 있다. 백기완 송건호 고 성석헌 김동길 고 성내운 한완식씨 등이 서울에서 5시간 가까이 걸리는 이 학교를 찾아와 「올바로 사는 길」을 가르쳐준 스승들이다.

정신교육 다음으로 고창고가 비중을 두는 것은 정서교육.

개교기념일(4월 23일)이 끼여있는 주의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3일간은 전 교생이 각종 운동경기와 바둑 장기,꽃꽂이 및 문학의 밤 행사 등 다채롭게 진행되는 축제는 기획,예산편성 및 집행,프로그램 마련 등 모든 진행이 대학처럼 철저하게 학생들 자치로 이루어진다.

학생자치는 「민주시민의 양성」이라는 이 학교의 교육이념에 근거한 것이다. 교육당국이 학도호국단체를 강요했던 시절에도 이 학교는 학생들이 총학생회장을 직접 뽑는 학생자치를 실시했다.

봄축제를 통해 공부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한 학생들은 다시 5월말∼6월초 1박2일의 야영을 떠난다. 소풍을 대신한 이 야영도 학생들 스스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2학기들어 가을에는 예술제를 개최한다. 연극,합창경연 등이 벌어지는 가을 예술제를 계기로 학생자치의 주역이 3학년에서 2학년으로 넘어간다.

겨울이 닥쳐 눈이 내리는 날이면 학생과 교사 모두 수업을 중단하고 함성을 지르며 뒷산으로 토끼몰이에 나서는 것은 고창고의 전통놀이로 정착됐다.

고승안교감(49)은 이처럼 다양한 축제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우선 공부하며 쌓인 피로와 긴장을 풀고 활력을 되찾는 효과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학생들 스스로 행사를 주관하면서 자율성과 창의성을 기르게 됩니다. 이런 교육효과는 공부하는데까지 파급돼 강제로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하는 분위기가 조성됩니다』

이 학교의 지식교육은 다른 학교에 비해 특이한 점이 별로 없다. 다만 교육당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래전부터 영어와 수학 두 과목에 한해 능력별 수업을 해왔다. 도 교장은 『특정과목의 성적과 학생의 인격,품성은 별개』라고 강조하면서 『영어,수학의 경우 학생 각자의 학력에 맞는 수업을 진행하는게 교육효과가 크다는 소신으로 능력별 수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능력별수업은 학생들의 성적을 고려해 A∼D 등 3∼4개반으로 나누어 영어,수학시간만 이동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반편성은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A반에 편성된 학생이 B반에 속하기를 원할 경우 B반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으며 실제로 이러한 학생들이 상당수 있다고 김선봉 교무주임은 말한다.

영어 수학 등 주요과목의 능력별수업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사실상 거의 모든 학교에서 이루어져온 점을 감안하면 능력별수업이 높은 대학진학률의 요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이 학교 교사들의 남다른 열의가 시골학교의 상대적 불리함을 극복하고 입시교육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올린 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고창고 교사들은 하오6시에 퇴근해 집에서 저녁식사후 밤8시께 다시 학교로 나온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대화도 나누기 위해서다. 『시골학교는 대도시 학교와 다릅니다. 교실말고는 공부할 장소가 없고 학교선생님 말고는 물어볼 사람이 없는 학생들이 대다수입니다 이런 학생들을 외면할 수 없어 보충수업비를 받지않고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해주기로 선생님들 스스로 결정했습니다』 교무주임의 설명이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대학수학 능력시험 등 새로운 대입제도의 윤곽을 파악하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을때 이 학교 교사들은 대학수학 능력시험에 대비한 과목별 교과지도안을 만들어 1,2학년들을 대상으로 토론과 참여위주의 새로운 방식의 수업을 시도했다.

이 학교는 교장과 교감도 수업을 맡고 있다. 또 교사 26명이 학생 6백여명의 이름과 얼굴,취미와 특기,가정형편 등 인적사항을 소상히 꿰고 있다. 부교재 채택료나 촌지 등 일반화된 교육현장의 부조리는 발붙일 곳이 없다. 이 학교도 부교재를 사용한다. 하지만 업자가 채택료를 제의할 경우 채택료에 해당하는 액수만큼 책값을 깎아 학생들이 그만큼 싼값으로 구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학교와 교사들이 깨끗했기 때문에 고창고는 교육행정당국의 권위적인 지시에 당당히 맞서 일선 교육현장의 교권을 지켜낼 수 있었다.

이 학교는 교복자율화 조치이전에 이미 자체적으로 획일적인 교복착용을 폐지했다. 또 5공초 서슬퍼런 신군부가 각 고교에 일정수의 학생을 삼청교육대에 보내라고 강요했을때도 이 학교 교사들은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우리학교 학생은 우리가 교육시킨다』며 굴복하지 않고 버텼다.

이 학교는 그러나 대부분의 시골학교처럼 학교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어려움에 처해있다. 급격한 농촌인구 감소로 학생모집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게 가장 큰 고민이다.

이 학교 학생 6백여명중 60%가량은 고창군이외 타지 학생들이다. 고창군인구가 고작 7만8천여명에 불과한데다 대도시선호 경향이 강해 공부 잘하는 자녀들을 대부분 일찍부터 대구·진주·마산 등으로 유학보내기 때문이다.

얼핏 생각하면 이 학교의 대학진학률이 높아 대도시에서 거꾸로 유학오는 학생이 많을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서울 등 대도시에서 온 학생은 전체 학생의 10%내외에 불과하다. 오히려 주변에 마땅히 진학할만한 고교가 없는 벽촌의 학생들이 생활비가 도시에 비해 싼 고창으로 유학 와 이 학교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 학교에는 강원도 두메산골이나 진도,욕지도 등 섬출신 학생들이 도시출신 학생보다 많다.

이 학교는 처음부터 우수한 학생을 모양 손쉽게 높은 대학진학률을 기록해 온 것이 아니다. 신입생들의 고입선발 고사성적은 진주 등 대도시 평준화지역 신입생들보다 오히려 낮다. 올해의 경우 남학생은 1백50점,여학생은 1백70점 정도였다.

결국 고창고가 「참교육의 실천장」 「진학률 최고수준의 명문고」가 된 비결은 우수한 신입생을 뽑아서가 아니라 학부모와 교육당국의 외압을 견뎌내며 교육제도에 정해진 원칙을 어기지 않는 범위내에서 독특한 건학이념에 충실한 교육을 해온 결과이다.

『이론적으로 규명할 수는 없지만 평준화 교육정책 속에는 자율성과 창조성을 억누르는 획일주의가 배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교육의 기회를 넓히고 과열입시 경쟁을 해소한다는 좋은 취지에서 출발한 평준화정책이 편향된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변질된 것도 따지고 보면 평준화교육 정책에 내재된 획일주의가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이처럼 경직된 교육정책이 추진된 배경에는 교육의 본질과 교육 본연의 역할보다는 행정편의에 중점을 두고 교육정책을 수립했던 역대정부의 권위주의와 관료주의가 작용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학교교육이 정상화되려면 「학생의 성적=학생의 사람됨」이라는 식의 편향된 입시교육이 바로 잡혀야 하며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일선 교육현장의 교육권과 자율권이 보장돼야 합니다』

도재원교장의 말은 평준화교육정책의 문제점과 개선의 필요성을 새삼 일깨워준다.

□특별취재반

설희관차장·김현수·장인철·여동은·남경욱·이진동·현상엽기자(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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