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를 굴복시키고 한제국을 일으킨 유방은 창업공신의 3걸중 하나인 한신이 반란을 도모한다는 말을 듣고 무사에 명하여 그를 결박했다. 한신은 길게 탄식하여 말하기를 「달리는 토끼가 죽으면 다음차례는 사냥개를 잡아 삶고,날아다니는 새가 없으면 좋은 활도 사장되며,적국이 무너지면 모신이 살해된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구나. 천하가 안정되었으니 주살 당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하였다. ◆이 말은 본디 중국 병법의 고전으로 꼽히는 「삼략」이라는 책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 책을 펴낸 이는 황석공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병법서라고 하나 정치와 권력의 본질을 투시한 눈이 오늘에 와서 읽어도 날카롭게 비친다. 정치는 하나의 대세의 흐름이며 현실무대의 주역들은 언제나 그리고 당연하게 바뀔 수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들이 재산공개로 크게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을 향한 측은한 시선은 찾아볼 수가 없다. 냉엄하고 엄격하다. 그러니 거명되는 당사자들은 더욱 착잡한 심경에 잠겨 있을 것이다. 국회의장까지 지낸 원로정치인이 정계은퇴를 선언하며 한신이 인용한 말을 재인용하여 떫은 감회를 은근하게 내비쳤다. 토끼사냥이 끝났으니 사냥개 차례가 아니냐는 뜻같다. ◆권세무상을 통감한듯한 말로 들린다. 그는 분명 정치현실을 잘 읽고 있다. 그러한 통찰력을 활용,국민의 마음과 대세를 제대로 읽었다면 오늘의 처지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만한 후회와 더불어 참회가 앞섰다면 그의 퇴장은 결코 허망하지도 쓸슬하지도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고사가 나왔으니 하나 더 첨가할 것이 있다. 공자는 그의 제자 가운데 안회를 늘 으뜸으로 꼽았다.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과실을 두번 범하지 않는다」(불천노 불이과)고 극찬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한그릇 밥과 물 한쪽박으로도 즐거움이 변치 않는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오늘의 흐름은 도도하다. 누구를 원망하고 화를 낼 계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또한번 과오를 저지르는 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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