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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티움의 미/김성우(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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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티움의 미/김성우(문화칼럼)

입력
1993.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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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년무객장폐관 종일무심장자한> (일년내내 손님이 없어 오랫동안 문이 잠긴채/하루종일 아무 잡념없이 그냥 혼자 한가롭다)당대의 시인 왕유는 관직을 떠나 은거한뒤 이런 시를 읊으며 자적했다. 화가로서도 대가를 이룬 그는 시화가 함께 「정의 미」가 주제였다.

요즘 우리 주위에서는 공직에 있다가 물러난 사람들이 아무 할일이 없어 일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저 관문근처를 빙빙 돌며 안을 기웃거리고나 있는 헐렁한 모습들을 흔히 본다. 인생의 진정한 가치가 어디있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불쌍하다. 명리와 영화가 인생의 모두이던가. 자신은 왕유같은 시인도 화가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할는지 모른다.

지난주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는 윤주영씨의 사진전이 개막되었다. 올해 65세의 윤씨는 정치학 교수,언론인을 거쳐 칠레 대사,청와대 대변인,문공부장관,국회의원을 역임하고 1979년 51세때 은퇴한 정치인이다. 퇴임하자 그때부터 카메라를 만지기 시작한 것이 지금은 당당한 사진작가로 변모하여 이번 개인전이 1987년이래 다섯번째가 된다. 사진작품집도 네권째를 냈다. 그는 그동안 10㎏이 넘는 장비를 메고 중남미,인도,네팔,모로코,튀니지 등 세계의 오지를 강행군하며 인간의 원형들을 찾아다녔고 사할린에도 가서 실항교포들의 생활상을 카메라에 담은 것이 이번 「동토의 민들레」전이다. 그는 첫 사진집 「내가 만난 사람들」의 후기에서 변신의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공직에서 물러난후 한때 무료한 나날을 보내며 허탈감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활동의 중단은 새삼 삶의 참뜻을 되새겨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때 나는 비리나 위선이 없이 진실된 삶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을 접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는 그후 취재여행을 하는 동안 아귀다툼속에서 부귀와 권세를 쫓아온 자신의 반생과 문명사회의 인간근성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깨달았다고 한다.

지난 3월초에는 외무차관,주불 대사,주유엔 대사 등을 거치며 30여년간 외교관 생활을 하다 1986년 정년퇴임한 윤석헌씨의 회고록 「먼길을 후회없이」의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윤씨의 이 저서에는 한국외교의 증언들뿐 아니라 공직생활중 틈틈이 쓴 많은 시편들과 그 시에 스스로 곡을 붙인 노래 악보들도 실려있다. 우리말 시는 물론 한시에다 영어와 불어로 직접 쓴 시들까지,어역이 외교관답게 넓다. 각국어를 동원한 시작생활로 여러나라의 재임시절을 명상할 그의 여생은 오죽이나 즐거울까 싶다.

고대 로마의 소 플리니우스는 집정관,총독 등을 지낸 대정치가였다. 문학적 교양이 있어서 공표할 목적으로 편지를 써서 「서간집」을 남긴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바쁜 공직생활에 시달리면서도 늘 보다 영원히 가치있는 생활을 희구했다. 그래서 관직을 은퇴한 어느 선배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우리는 인생의 청년기와 중년기를 나라에 바쳐야 하지만 만년은 우리 자신에게 주어져야 합니다. 법률은 노년자에게 한가를 되돌려주고 있습니다. 당신과 같이 아름다운 정일이 언제 내게 허락될는지요』

여기서 말하는 「한가」란 「오티움」이라하여 그냥 빈둥거리며 세월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세속의 잡사에서 떠나 뭔가 인생에 보람있는 일을 하는 시간이란 뜻이었다. 그는 스스로 공무중에라도 틈만 나면 시골의 별장으로 달아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했다.

이 소 플리니우스가 어떤 은퇴하는 사람에게 꼭 작품을 쓰도록 권하는 편지를 남기고 있다.

『무엇인가를 쓰십시오. 그래서 영원히 당신의 것이 되는 것을 만드십시오. 왜냐하면 당신이 가지고 있는 다른 것은 모두 당신이 죽고나면 차례차례 다른 주인의 손으로 넘어가지만 작품만은 일단 당신의 것으로 세상이 나온 이상 결코 당신의 것이 되지않는 일이 없을테니까요』

그렇다. 무엇인가를 창작하는 것이다. 문화적 창조행위만이 허무와 무위에서 삶을 구출할 수 있다. 재활이다. 문화예술에 정들이지 않은 퇴직후의 인생은 비참하다. 은퇴기의 인생에 생기와 향기를 함께 불어넣어 주는 것은 문화생활밖에 없다. 그러기위해 자신의 주업이 무엇이 되든 어릴 때부터 문화예술에 대한 취미와 소양을 길러두자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시기에나 너무 늦지는 않다. 지금 시작해도 된다. 시를 못쓰겠거든 글을 쓰자. 저술을 못하면 자서전이라도 쓰는 것이다. 책이 한권될만한 인생을 살아오지 않은 사람은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다. 글을 쓸줄 모른다고 핑계대는가. 인생의 진실앞에 문재따위는 무색하다.

그림을 그릴수도 있다. 초심자라도 조금만 배우면 당신 자신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 살아온 인생의 깊이만큼 그림의 색채는 진해진다. 명화가 비싸다고 투덜대는가. 당신의 집벽에 걸린 당신의 그림은 어떤 명화보다도 값질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인생은 그 그림처럼 아름다울 것이다.<본사 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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