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인기높아… 시민동맹 지도자옐친 대통령의 비상통치선언으로 러시아정국이 극한 대립의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 정치세력중 최대 정파인 시민동맹의 공동대표인 알렉산드르 루츠코이 부통령(46)이 급격히 실세로 부상하고 있다.
만약 인민대표대회(의회)가 옐친을 탄핵할 경우 그는 헌법에 따라 자동적으로 대통령직을 수행케 된다.
그가 부각되는 이유는 옐친 대통령의 후임이라는 사실이외에도 현 정국을 타개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의회내 최대다수(약 45∼50%) 대의원들이 그가 이끄는 시민동맹 소속이다. 시민동맹의 결속력이 사안에 따라 느슨해지기는 하나 현재 옐친을 반대하는 입장에는 모두 동참하고 있어 그는 옐친의 대안으로 충분한 입지를 확보하고 있다.
일부 중도보수파들은 옐친 탄핵이후 루츠코이가 대통령직을 승계하면 헌법을 개정,그로 하여금 옐친의 잔여임기를 채우도록 하자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그는 이같은 주장에 반대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수강경세력이 의회내에서 다수가 아닌 이상 시민동맹이 주도권을 잡는다면 수장인 그를 추대할 것은 분명하다.
둘째로 그는 국민의 지지도면에서 옐친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는 평소 ▲경제개혁의 점진적인 추진 ▲독립국가연합(CIS) 각 공화국에 대한 영향력 강화 ▲정부정책의 민생안정 우선 등을 주장해왔다. 또 러시아 민족주의를 주창하는 등 강력한 러시아 건설을 찬성하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셋째로 그는 향후 정국 향배의 최대변수인 군부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군출신인 그는 만약 유혈사태가 날 경우 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신망을 군부로부터 받고 있다.
이같은 이유 때문에 루츠코이가 옐친의 대안으로 각 정파에서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최근 모스크바를 방문했던 닉슨 전 미 대통령이 『루츠코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한 것도 러시아 정세의 흐름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루츠코이는 대통령이 비상통치선언을 철회해야 하며 헌법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지난 47년 우크라이나에서 출생한 그는 참모본부대학을 졸업한 이후 91년 7월 부통령에 당선되기전까지 군에 몸을 담았었다.
특히 87년부터 88년까지 아프가니스탄 주둔 방공군 비행 연대장을 역임했던 그는 비행기가 격추돼 포로가 된뒤 탈출해 국민들로부터 「아프간전쟁의 영웅」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공군 소장으로 전역한 그는 『현 사태가 파국으로 결판나면 러시아는 걷잡을 수 없는 유혈사태를 빚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군을 떠나 정치에 입문한 그의 야심과 러시아의 현 정세를 고려해볼 때 그가 러시아의 차세대 지도자가 될 가능성은 점차 높아가고 있다.<모스크바=이장훈특파원>모스크바=이장훈특파원>
◎러 정국 열쇠쥔 그라초프 국방/중립견지속 향후노선 유동적
러시아군은 현재 정치권의 치열한 보혁대결에서 한걸음 물러선채 중립자세를 견지하고 있지만 상황은 매우 유동적이다. 옐친이 강행할 4월25일의 국민투표를 전후해 정국 격변이 몰아칠 경우 러시아군은 동요할 수 밖에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즉 옐친이 국민투표에서 패배하든가 아니면 의회와의 타협없이 노골적인 전제통치 노선을 선택할 때 군부의 내부 균열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그라초프 국방장관이 향후 군내부의 반발을 무마하고 「장교동맹」 「장교회의」 같은 반옐친 조직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옐친으로선 초미의 관심사이다.
91년 옐친에 의해 국방장관으로 중용된 그라초프가 21일 옐친의 비상통치 지지를 선언하고 군의 중립을 다짐한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그가 군을 결속시켜 옐친의 개혁추진을 지원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다. 그는 우선 91년 8월 불발 쿠데타 당시 쿠데타 진영에 가담했다가 실패 가능성을 재빨리 탐지하고 옐친 지지로 되돌아서는 기회주의적인 처신을 한 적이 있다. 이와관련해 그라초프가 옐친 대통령 지지를 위한 적극적인 군사력 사용을 확약하지 않은 사실은 주목할만하다.
또 그에 대한 군내부의 신망과 충성도도 빈약하다는 평가다. 공정대출신 장교로 야전에는 강한 전략가인지 모르지만 군통수권을 확립 유지할 수 있는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더구나 소련체제 붕괴이후 열악한 복무조건과 사회적 푸대접을 받고 있는 러시아군이 그라초프의 명령을 어느 선까지 수용하느냐도 변수이다. 영국의 BBC방송 등 서방언론들도 상황전개에 따라 군부가 독자적인 움직임을 취할 개연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이상원기자>이상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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