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노태우정부가 상업방송의 허가를 추진하고 있을 때 반대의 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반양론의 합리적 합의없이 일방적으로 새 상업방송의 허가가 강행됐었다.뒤이어 노태우정부는 유선방송의 뼈대를 만들어 놓고 다음 정부에 넘겨놨다. 우리는 다음세대의 방송매체로 주목받는 유선방송만은 정부에 의한 「일방통행」이 아니라 자유로운 토론과 합의절차를 거쳐 발족하기를 바란다.
그런 뜻에서 지난 주초에 알려진 「외국참여」 문제는 토론없이 지나칠 수 없는 문제임을 강조해두고자 한다. 시비의 발단은 지난 연초 미국측이 한국의 유선방송법을 문제삼은데서 시작됐다.
미국이 문제삼은 것은 종합유선방송 프로그램 공급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금지 조항과,외국프로그램 편성비율을 30% 이하로 제한하고 있는 대목이었다. 지적재산권 문제를 둘러싸고 지난 1월 워싱턴에서 열린 비공식 협상에서 미국은 상당히 강경한 자세로 압력을 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프로그램 공급업에 대해 15%까지 외국인투자를 허용하고,외국프로그램 한도도 미국측 요구대로 50%까지 허용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정부의 생각은 이러한 양보로 지적재산권에 관한 「우선 협상국」 지정을 모면해보자는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양보는 사실상 케이블 텔레비전을 완전히 「수입소매업」화하는 심각한 정책결정이 될 것이다.
사실 케이블 텔레비전은 우리의 여건이 채 갖추어지기도 전에 정책부터 강행된 것이다. 우선 시설·장비도 자급태세가 돼있지 않다. 게다가 프로그램의 제작·공급은 이제 겨우 걸음마단계에 있다. 수입프로그램 허용한도를 50%까지 올린다는 것은 미국의 압력이 아니더라도 불가피한 일일지도 모른다.
결국 케이블 텔레비전은 수입된 시설을 통해 수입프로그램을 내보내는 수입소매업으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우리의 대중문화는 텔레비전을 제외하고 영화·레코드·비디오 등 이미 수입품이 지배하는 시장이 되고 있다. 비디오만해도 외화가 77%를 차지하고 있다.
케이블 텔레비전 프로그램 편성의 수입의존비율을 50%로 한정한다고 하지만,싹트는 단계에 있는 국내 프로그램 제작업은 미처 햇볕을 보지도 못하고 말 것이다.
시장개방이 있기전에 그 여건부터 갖춰야할 것이다. 여건도 갖추기전에 케이블 텔레비전을 서두른다면 무해무익이 아니라 백해무익이 될 것이다. 시장개방이 불가피하다면 시설·장비의 하드웨어 자급태세와 프로그램의 소프트웨어 산업을 어느 정도 정비한 다음으로 계획 자체의 속도를 재조정해야 할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