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엔 “부담” 학교는 “파행교육”/명문대 본고사 대부분 국·영·수치중/3과목 위주 우열반 편성등 부작용/수능시험도 출제경향·기준 애매 “대책 전전긍긍”94학년도부터 시행되는 새 대입시제도가 학교교육 정상화라는 본래의 개선취지에서 크게 벗어나 수험생들에게 이중부담을 안겨주면서 학교현장이 몸살을 앓고 있다.
당초 입시제도 개선목적은 현행 학력고사에서 국어·영어·수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고교교육이 입시위주로 운영되는 것을 막고 과열과외 등을 잠재운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고교 내신성적을 40% 이상 반드시 반영,학교교육 정상화를 도모하는 한편 학력고사 대신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대학별 본고사를 대학 자율로 시행하는 새 대입제도를 확정한 바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언어,외국어(영어),수리탐구 등의 영역으로 나눠 대학입학적격자 선발기능을 수행토록 하고 대학별 본고사 과목은 계열이나 학과특성에 가장 가까운 교과목 2∼3개로 한정,수험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었다.
그러나 서울대 등 상위권 대학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변별력이 없을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본고사를 국어·영어·수학위주로 치르기로 함에 따라 입시부담 경감은 커녕 짐하나를 더 얹어준 셈이 되었다.
이같은 시행착오로 학교 현장에서는 우열반 평성과 이동식 수업 등 갖가지 부작용이 일고 있어 일선 교사들은 새 제도가 정착되려면 3∼4년이 걸릴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서울 강남 K고 진학담당교사이 장모씨(55)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추구하는 고교 수업개선의 취지는 이해한다』면서도 『그러나 현행 교과과정으로는 기본개념의 이해나 사고력 배양을 위한 수업을 시도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현재 K고는 3학년생을 2학년때 내신성적 순으로 10개 반으로 나눠 국·영·수과목에 중점을 두어 일주일에 10시간씩 보충수업을 운영하고 있다.
장 교사는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본고사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국·영·수에 치중할 수 밖에 없어 교사나 수험생 모두에게 이중부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S고를 비롯한 대부분의 고교는 학생들의 강의개설 요구가 늘자 「이동식 수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동식 수업」은 현재 정규 수업시간을 전후해 국·영·수과목을 대강당에서 1∼2시간 강의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마땅한 부교재가 없는데다 수강학생수가 많아 프린트물을 사용하고 있다.
유명학원들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제쳐두고 본고사 준비에만 몰두하고 있다. 서울 J학원은 지난 2월 개강과 함께 종합반 강좌를 국·영·수 중심의 본고사 준비체제로 바꿨다.
종합반 강좌는 문·이과 공통으로 국·영·수과목의 심화학습에 초점을 맞춰 서울대 이과계 본고사 과목인 과학과목을 선택수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논술형 해답을 요하는 주관식문제에 대한 대비책으로 주 1시간짜리 논리학 강좌를 개설하고 있는 것도 특색이다.
서울 D학원도 본고사 중심수업체제로 수업을 운영하는 한편 J학원과 마찬가지로 지망대학별로 분반을 운영하고 있다. D학원은 따로 본고사 지침서를 만들어 학원생과 전국고교에 배포하는 한편 미국·일본 등 해외 수험정보까지도 수집하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 입시에서 서울대 동물자원학과에 지망했다가 낙방한 장모군(19·서울 D고교 졸)은 『재수생 가운데는 이과 본고사를 대비해 지망대학의 수학·과학관련 교양교재를 공부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해 본고사 부활이 조만간 일본입시 문제까지 수입해 공부하던 과거의 소동을 재연할 조짐을 시사했다.
교육부의 금지지시에도 불구하고 우열반 편성은 일선 고교에서 보편적이고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나아가서 사회전체의 교육관이 바뀌지 않는 한 일류대 열망은 꺼질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변화된 입시제도는 본고사의 출제를 대학자율에 맡기고 있어 입시준비의 「효율성」을 위해서도 「차별진학지도」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서울 K고는 벌써 96학년도 대입시를 겨냥해 1학년생 가운데 연합고사 성적우수자를 각반 3명씩 뽑아 「상비군」을 편성했다.
『당장 우열반을 편성하지는 않고 있다』고 밝힌 서울 Y고교 이모교사(47)도 『그러나 1차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는 8월이후에는 어떤 형태로든 「명문대 입시반」을 운영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서울 C여고 이모교사(53)는 『예를 들어 수리탐구2에서 지리와 역사가 결합된 문제가 출제될 가능성이 있다고 할때 과연 어느 교사,어느 학교가 복합적 사고력을 훈련시킬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고 『현재로선 무대책이 대책』이라고까지 말했다.
실제로 서울 Y고교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비,새로운 교육방식을 연구하기 위한 세미나를 지난해부터 수차례 가졌다.
그러나 교사들은 현행 고교교육 과정상 복합적 사고능력과 개념에 대한 깊은 이해력 위주로 가르치다보면 대입시준비는 커녕 정상적인 수업마저 진행시키기 힘든 실정이라고 결론 지었다.
이같은 관점에서 볼때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맞도록 고교교육 과정을 재편해야 한다는 일선교사들의 지적은 타당성을 갖게 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둘러싼 이같은 혼란은 7차에 걸친 실험평가를 거치는 동안 국립교육평가원의 출제방향과 난이도 조정이 불안한 상태를 보였기 때문에 가중되고 있다.
처음에 당혹스러울 만큼 낯선 실험적 문제와 지문 등을 선보였던 평가원측은 실험평가를 거듭하면서 부정적인 평가가 잇따르자 난이도 조정에만 극도로 신경을 쓰게 됐다.
그 결과 7차 실험평가문제는 몇가지 특징적인 문항을 제외하고 과거의 학력고사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에따라 서울 K고 등 일부 학교에서는 지난해까지 「수학능력대비노트」 「독후감노트」 등을 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작성케 했으나 요즘에는 시들해진 경우가 많다.
20년 이상 진학지도를 해온 서울 K고 손모교사(55)는 『적어도 향후 3년간은 새 대입시제도가 실험적 수준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교과교육이 새 제도를 따라갈 수 있도록 교육과정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 대입참고서」 범람/현재 판매중인것만 2백여종/일부 내용·체계 엉성 혼란초래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본고사 대비용 참고서가 범람하고 있다.
서울 K문고에만 수학능력시험용이 1백50여종,본고사용이 50여종 진열돼 있다. 이들 참고서는 하나같이 내용이 충실하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천차만별이다. 수학능력시험 언어영역 참고서의 경우 전반부에 개념학습을 보강하긴 했으나 과거 국어 참고서의 내용을 순서와 체제만 바꿔 편집한 경우도 허다하다.
수학능력시험에 대한 실험평가가 마무리되기도 전인 지난해 2월에 초판으로 나온 참고서가 아직까지 버젓이 팔리고 있어 수험생들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출판사의 이름과 저자명을 도용하거나 다른 참고서내용을 그대로 베낀 출처불명의 참고서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또 D사에서 나온 대학수학능력시험 대비용 문제집시리즈는 이 시험이 복합적 사고력과 교과과정의 이해수준을 측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정작 문제집의 구성은 구태를 벗지 못했다.
예를 들면 수리탐구 영역은 물리 화학 지학 생물 사회 지리 역사 윤리과목 등을 통합적으로 다룬 문제양식이 필요한데도 제목만 수학능력시험의 영역으로 표시한 뒤 각 권은 한과목씩 세분한 과거 문제집 형태를 답습하고 있다.
한편 94학년도 대학입시의 경향과 대책을 정보집 형태의 안내서로 선보인 책도 10여종이나 된다. 이 가운데 D사의 정보집에는 ▲본고사 과목별 출제경향·대책 ▲수학능력시험 영역별 출제경향·대책 ▲대학별 지원전략·준비 답안작성 보기·채점기준 ▲서울대 70년대 본고사 문제분석과 일본 본고사분석 ▲프랑스 대입시문제인 바칼로레아,미 SAT분석 등의 내용을 광범하게 담고있다.
70년대 본고사문제와 분석만을 담은 문제집도 인기를 모으고 있는데 H사의 것은 74∼80년까지 전국 7개 주요대문제와 86년 대학별 논술고사 문제를 덧붙였다.
이와함께 최근에는 「서울대 본고사대비 국어참고서」처럼 본고사실시대학 해당과목의 석·박사과정 학생들이 편집한 참고서도 선보이고 있어 특정대학의 출제경향 관련 수험생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K서점에서 참고서를 고르고 있던 재수생 김모군(19)은 『본고사 대비를 위한 심화학습 참고서와에 그다지 눈길을 끄는 참신한 참고서는 별로 없다』고 말했다.
참고서 범란현상에 대해 K서점 학습부 일반서적과 직원 김모씨(29·여)는 『최근들어 유명입시출판사의 참고서 제목을 도용한 정체불명의 유사품도 나돌고 있는 실정』이라며 『참고서의 종수는 올 상반기까지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별취재반
설희관차장·김현수·장인철·여동은·남경욱·이진동·현상엽기자(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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