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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권리장전 선포/김일순 연세의료원장(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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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권리장전 선포/김일순 연세의료원장(초대석)

입력
1993.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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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중심 의료 실천하겠다”/「친절한 병원」 노력의 하나로 탄생/의사와의 관계 이젠 대등해져야/윤리위 운영 진료부조리등 제재연세의료원(원장 김일순)은 8일 「환자의 권리장전」을 선언하고 환자중심의 의료를 실천할 것을 약속했다. 연세의료원은 이날부터 환자에게 비밀보장권·알권리·선택할 권리 등을 포괄적으로 인정한다는 환자의 권리장전을 포스터와 유인물로 제작,병원 곳곳에 게시하는 한편 환자들에게도 배포하고 있다. 환자의 권리장전은 환자에게 도움을 주는 원칙,환자에게 불이익이 없도록 하는 원칙,환자의 자율을 존중하는 원칙,사회정의를 실천하는 원칙에 따라 진료할 것을 천명하고 있으며 「환자는 인간으로서의 관심과 존경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등 10개항의 환자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이번 권리장전은 의료인들이 환자의 권리를 존중함으로써 의사·환자간의 우열적 관계를 청산하고 의사 편의위주의 병원 경영중심을 개선하겠다는 의지표현으로 국내 의료계에 미칠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 김 원장을 만나 국내 처음으로 환자의 권리장전을 선포한 배경과 의료실태를 들어본다.

­먼저 「환자의 권리장전」이란 무엇인지 간단히 정의를 내려주시겠습니까.

『환자의 권리란 환자가 되었기 때문에 권리가 새로 생긴다는 것은 아닙니다. 환자도 한 인간인 만큼 병원에 오기전부터 본연의 권리를 가지고 있으므로 병원에서 이를 존중해주자는 것이 이번 권리장전의 의미입니다. 다시말해 환자가 병원에 오더라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던 권리를 존중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환자의 권리장전 10개 항목을 뒤집어 생각하면 그동안 환자에 대한 의료계의 서비스가 부실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의료계가 이같은 서비스의 부실을 스스로 인정하고,반성하겠다는 뜻에서 권리장전을 발표했다고 봐도 될까요.

『미국의 경우 병원협회서 환자의 권리를 선포했을때 비판의 소리도 높았습니다. 심지어 환자의 권리선언을 도둑이 앞으로 도둑질을 하지 않겠다는 것에 빗대는 말도 있었습니다. 이번 환자의 권리장전도 대외적 선언이라는 의미보다는 의료원 내부적으로 자각하고 마음가짐을 다시 하자는데 초점을 맞추고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의료계가 환자에게 일부 불친절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불순한 의도가 숨어있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지금와서 돌아보니 의료계가 환자를 대하는 자세에 문제가 있다고 자각한 것입니다』

○지난 85년 시도실패

▲미국 보스턴에 있는 베스이스라엘 병원이 지난 72년 이를 채택한후 세계 각국의 병원이 받아들이고 있는 환자의 권리를 우리나라는 이제야 받아들이게된 배경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또 문민정부가 출범한지 한달도 안된 이 시기에 환자의 권리장전을 선언해 문민정부의 개혁흐름에 발을 맞추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난 85년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이란 단체에서 환자의 권리를 들고나와 의료계에 이를 요구한바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의료계의 반대에 부딪쳐 성공하지 못하고 무산된 뼈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평소 세브란스병원은 기독교 계통의 병원이기 때문에 환자들에게 좀 더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며 잘해줘야할 것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또 산하 병원장 등 여러 관계자와 우리나라에서 제일 친절한 병원을 만들수 있는 방향에 대해 계속해서 논의를 해왔습니다. 이런 일련의 노력을 해오던 것 중에 환자의 권리장전이 들어있었을뿐 문민정부 출범과는 관계 없습니다』

▲권리장전을 선언한후 각 병원과 관계단체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이번 권리장전 선언에 대해 여러곳에서 상이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병원협회는 환자의 권리선언을 크게 환영하면서도 이같은 일을 협회와 같이 했었으면 좋았다는 아쉬운 뜻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병원협회의 주장대로 모든 병원이 환자의 권리를 공동으로 선언한다는 것은 현재의 상황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판단,연세의료원이 먼저 선언을 했습니다.

대한의학협회는 주변의 비난을 우려하는 입장을 취했다고 들었습니다. S대병원의 경우 부원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 용기있는 일을 추진했다고 격려한 후 내용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외에 의사와 의사가 아닌 일반인들이 「정말 잘 했다」 「참 감사하다」 등의 내용으로 많은 전화를 해주었습니다』

▲외국의 경우 암환자 등에게 질병의 상태를 알려주면 충격으로 병이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때문에 질병의 통고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환자의 알권리,선택권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이는 환자의 권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우려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강력한 권리는 생존권입니다. 그러나 사형을 언도받은 죄인은 살수 있다는 생존권이 없듯 모든 권리는 절대적이지 못하고 경우에 따라 유보될수는 상대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환자도 자신의 질병을 알 권리가 있지만 병을 아는 것이 환자에게 해롭다면 알권리를 유보할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관계로 묘사되는 가부장적인 모델에 비춰졌습니다. 의사는 환자의 병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환자를 보호하고 돌봐주는 직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이런 모형을 요즘은 계약관계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환자는 의사에게 자신의 질병치료를 맡기고 의사는 치료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받는 대등한 관계로 발전한 것입니다.

의료를 가부장적인 관계로 보는 시각에선 질병에 대해 잘 아는 의사의 결정이 환자의 선택보다 정확하기 때문에 환자의 선택권리는 어불성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등한 계약관계로 보면 환자 자신의 일은 자신이 결정해야하기 때문에 큰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또 의사는 환자질병에 대한 의학적 측면만 알뿐 환자의 가치관은 모르는게 사실입니다. 암으로 3개월의 시한부인생을 선고받은 환자의 경우 수술로 3개월을 연장할수 있다면 의사는 수술을 권고하겠지만 막대한 비용과 수술에 따르는 고통때문에 수술을 거부하는 환자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의사는 환자의 개인 및 가정적인 문제,가치관 등을 무시하기 마련이었습니다.

수술여부는 의학적 측면과 환자의 사정이 일치할때 실시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환자에게 알권리와 선택할 권리를 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이번 선언으로 환자들은 선택권과 함께 무엇이든지 떳떳하게 물어볼 수 있는 권리도 지니게 됩니다.

○시설부족속 최선을

▲다른 부분도 마찬기지지만 의료계도 인력과 시설면에서 상당한 곤란을 겪고 있다고 알고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의 권리를 보다 존중하려면 환자 진료시간이 많이 소요돼 인력충원 등 부수적인 문제가 도출될 것으로 봅니까.

『현재의 병원 상황에서 인력을 보충하고 시설을 확대하면 환자의 권익은 더욱 확대될 것입니다. 그러나 의료보험수가가 너무 낮아 병원경영상 제약받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한명의 의사가 하루 1백여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간호사도 극히 부족한 실정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같은 제약된 조건은 별개의 문제이고 현재의 조건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우선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이번 권리장전은 지금까지 의료진이 무의식적으로 무시하고 행하지 않던 부분을 한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예를들어 지금까지 병원에선 육체에 대한 비밀을 지킬 수 있다는 권리를 무시한채 진료를 핑계로 공개석상에서 옷을 벗게하는 등의 사례가 빈발했으나 이번 권리장전의 선언으로 의사가 이를 자각하고 좀 더 정중하게 요청을 한다든지 휘장을 쳐주는 등의 조치를 취하게 될 것입니다』

○의료진 스스로 개혁

▲권리장전은 선언적인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그러나 선언을 받쳐줄 수 있는 다리가 없어 공중에 떠있는 느낌입니다. 의료행위도 인간이 하므로 잘 지켜지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으로 보는데 권리장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세부적인 시행규칙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환자의 권리장전은 의사의 처벌이나 징계보다 의료진 스스로 의식개혁을 일으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더 큰 목적이 있습니다. 의료진이 환자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고 상대적으로 친절하지 못한 의사가 있으면 교육과 설득을 통해 다같이 잘해보자고 뜻을 모을 것입니다.

행정적으로는 이번 선언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여러가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연세의료원 산하 각 병원별로 환자의 불편사항이나 민원을 전화나 구두로 접수받는 신고센터 신설이 첫번째 사업입니다. 이곳에 접수된 사건은 감독급 간호사가 직접 해결해주거나 시정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또 병원의 비리,부조리 등과 함께 의사의 심각한 행위가 적발된 경우 이를 심판할 수 있는 의료윤리위원회를 병원별로 구성,운영하고 있습니다』

▲환자의 권리장전 10개 조항은 모두 당연한 것들로 이뤄졌다고 봅니다. 그러나 환자에게 의학적 시도나 연구참여에 거부할 권리를 준다는 5번째 항목은 교육과 연구를 중시하는 대학병원에 많은 어려움을 가져다 줄 것으로 보는데….

『의학은 임상실험이 필수적입니다. 지금까지 신약이 나오면 환자에게 통보없이 의사 자의적으로 이를 사용,기존 약과 비교연구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환자에게 임상실험의 의미를 설명하고 부탁한 다음 양해를 구하고 투약해야 합니다.

또 심한 우울증이라든지 컨디션이 너무 안좋아 사람과의 접촉을 싫어하는 환자의 경우 대학병원에 왔다고 해서 수련학생들의 질문에 대답할 의무는 없습니다. 이 경우 환자는 「지금은 괴로우니 수련학생들과 접촉을 피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연세의료원을 찾는 환자는 이곳이 대학병원이기 때문에 수련학생들도 있고 임상실험의 대상이 된다는 것도 알고 있으므로 인격적인 대우와 함께 양해를 구하면 환자 스스로 연구에 협조해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환자의 상태는 무시한채 무조건 교육대상으로 강요해왔던 것입니다』<대담=이병일 편집국 차장> <정리=선연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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