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7월1일 하오 2시.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중앙청(현 국립중앙박물관) 광장에서는 제6대 대통령취임식이 거행됐다. 엄숙한 분위기속에서 사회자가 개회선언을 하는 순간 멀리서 『지금부터 6·8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모임을 갖겠습니다』는 마이크 소리가 울렸다.
국무총리의 식사에 이어 취임 선서를 한 박정희대통령이 『70년대까지 자립경제·공업입국을 위해 힘찬 전진을 하겠습니다…』라고 취임사를 하는 동안 『우리는 3천만 애국시민들과 빼앗긴 주권을 기필코 되찾겠습니다』는 마이크소리가 계속 울려 뒤섞였다.
마이크소리가 나는 곳은 광장서 직선거리로 5백여미터 떨어진 안국동 로터리의 신민당 당사였다. 바로 23일전인 6월8일에 있은 7대 총선거에서 장차 3선 개헌을 꿈꾼 박 정권이 원내 절대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3·15 부정선거에 버금가는,무지막지한 불법선거를 자행한데 대해 야당이 국민의 성원속에 등원을 거부하며 선거 무효투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대통령취임식에 불참은 물론 전날부터 24시간 단식투쟁을 끝낸 신민당의 당간부,의원 당선자와 원외위원장 등 1백여명은 취임식과 같은 시간에 당사옥상에서 유진오당수 주도로 소위 민권 선언대회라는 명목으로 취임식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당시 박 정권의 야당 경시와 탄압 부정선거의 자행과 이에 맞서는 야당의 극한·강경투쟁은 바로 한국정치의 진면목이자 수준이었다. 당시 4선의 김영삼의원과 전국구로 처음 당선된 29세의 이기택의원도 당연히 옥상대회에 참석했었다. 그날 식장을 취재하던 필자는 단상과 안국동쪽을 번갈아보면서 착잡한 기분을 느꼈던 일이 새삼 떠오른다.
그로부터 26년이 지나는 동안 야당은 나라 안팎의 정세변화와 정국흐름에 따라 숱한 풍상을 겪어왔지만 이번 전당대회에서의 이기택대표 체제의 선택은 야당 사상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대표의 당선은 장로체제로 이어온 정통야당의 세대교체를 의미하는 한편 야당도 시대변화에 맞게 대대적으로 개혁·개편해야 된다는 국민과 당원들의 요구가 채택된 것이다.
이 대표에게는 해결해야 될 과제들,어려운 난제들이 가로 놓여있다. 뿌리깊은 지역성과 파벌성,실리보다 명분에 집착하는 체면의식,대화할줄 모르고 협조에 인색한 자세,1950∼60년대의 의식을 벗지 못하는 구태,정통야당 타령만 하는 습성 등 고질병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더구나 대통령선거 패배에 이어 김대중 전 대표의 정계은퇴에 따른 충격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당발전을 막는 큰 저해요인이다.
이런 모습과 자세로는 대변화와 개혁의 시대의 강력한 야당,건강한 야당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현재 새 문민정부는 30∼40년간 나라안에 쌓인 온갖 적폐를 씻고 바로잡기 위해 엄청난 개혁작업에 착수하여 큰 파장이 번지고 있다.
이같은 개혁과 수술은 오래전부터 야당이 줄기차게 주창해온 사인들로서 새정부가 단칼에 무썰듯이 해내고 있으니,과연 이같은 상황에서 야당은 어떤 위치에 서고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 것인지도 큰 숙제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어차피 국내외적으로 대변혁의 시대에 접어든 만큼 야당은 새로 시작하는 자세로 새출발을 해야 한다. 참다운 새출발과 국민의 호응 등은 뼈를 깎는 과감한 자기개혁과 수술에서 비롯돼야 할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이 먼저 해야 할 일은 국민에게 신뢰감을 주고 정권 담당능력이 있음을 실증으로 보여줘야 한다. 신뢰감과 수권능력의 축적은 명분과 파리를 앞세운 소아병적인 투쟁자세를 훌훌 벗고 정책개발,대안제시로 대정부 견제와 비판활동에 나서는게 긴요하다. 두번째는 누누이 얘기한대로 당내 민주화다. 금주안에 총무를 자유경선하는 것도 좋은 발전이지만 지구당 위원장과 시도지부장 등도 당원과 대의원들이 뽑고,대부분의 당직도 선출제로 하는 집안 민주화를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다음 대표나 최고위원이 과거처럼 안배하듯 당직을 나눠갖는 일은 차제에 지양해야 한다. 그것은 결국 파쟁만 유발시키고 유능한 재목의 성장을 막는 병폐가 될 것이 틀림없다. 끝으로 정부와 여당관계는 어디까지나 정책으로 대응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국민이 지지할 경우,또 정당할 경우 정부의 개혁작업을 혼연히 뒷받침해주는 것이야말로 긴 안목에서 야당 자신 스스로 돕는 행위가 될 것이다.
어쨌든 새정부의 개혁을 감독,견제할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너무 크다. 「강한 야당」 「건전한 야당」이 아닌 9명의 대표와 최고위원이 제각기 파리와 고집만을 앞세워 만의 하나 배가 산으로 가게하는 우는 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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