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미끼 대놓고 돈요구/「노른자지역」 근무위해 상납도 예사지난 1월 주유소를 개업한 박모씨(40)는 소방서가 불꺼주는 곳만은 아닌 것을 알았다. 목좋은 서울인근 경기 K시에 어렵사리 주유소 허가를 받아 건물을 신축했던 박씨는 필요한 시설을 다 갖춰놓고도 마지막 단계인 완공검사를 받기까지 2개월여를 허비해야 했다. 완공검사를 받기 직전 찾아온 관할소방서 직원은 1백만원을 요구했다. 주유소가 소방법상 일상적으로 위험물을 취급하는 위험물 취급소로 분류된 터라 앞으로 계속 관할소방서와 접촉해야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박씨는 뒷일을 생각해 1백만원을 줬다.
하지만 한달이 지나도 완공검사는 나오지 않았다. 미심쩍어진 박씨는 중앙부처 서기관인 친구에게 하소연했고 그 친구는 다시 내무부의 아는 공무원에게 전후사정을 얘기했다. 박씨는 며칠후 완공검사를 받아낼 수 있었다.
서울 종로구에서 카페를 경영하는 이모씨(43·여)는 지난주 개업 2주년 기념으로 관내유지 기관장들을 초청,자축연을 열었다. 지하 1층 10여평 규모의 자그마한 가게로 화재경보기 비상구 등 화재예방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것은 물론 계단마저 불씨만 떨어지면 불쏘시개나 다름없는 건물내 카페에 소방파출소장이 파출소장과 함께 상석에 앉아 즐기고 있었다.
위험한 근무조건과 박봉으로 인한 소방서의 인력난 자체가 소방행정에 발등의 불이 돼버린지 오래지만 주택가 골목길의 작은 구멍가게부터 수십층의 대형빌딩에 이르기까지 일반주택을 제외하고 화재예방시설을 갖춰야 하는 모든 곳에 만연된 소방관련 공무원들의 부조리는 좀체로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박모씨의 경우처럼 위험물 취급시설의 설치허가,준공검사에서부터 소방설비 공사업의 허가,까다로운 소방설비의 설치와 정기점검,소방훈련에 이르기까지 화마를 막기위한 소방공무원 본래의 임무는 대충대충 넘어가려는 시민들의 적당주의 심리와 맞물려 불을 지피는 꼴이 되고 있다.
인근에 술집 목욕탕 재래식시장 등 화마가 도사린 건물들이 밀집한 서울 H동에서 술집을 경영하는 정모씨(32·여)는 6개월마다 실시되는 소화기능 안전시설점검 때와 명절때마다 10여만원씩 관할소방서 지도계원들에게 주고 있다. 하지만 정씨는 그 정도는 인사치레라고 생각한다.
중소기업체 사장 오모씨(52)는 회사가 화재경계지구내 있어 화재통보훈련이나 소화훈련 등 훈련을 연 2차례 이상하게 돼있는 소방법 규정 때문에 관할소방서에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소방훈련을 하는 거야 당연하지만 막상 훈련으로 생기는 조업차질을 감안하면 차라리 훈련을 면하고 「인사」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것이 오씨의 논리다.
지난해의 청주 우암아파트 붕괴사고나 광주 해양도시 가스폭발사고 등 대형사고가 발생하고 나서야 항상 구두선처럼 들먹여지는 것이 사전안전점검 소홀이다.
교통경찰이나 민원창구 공무원들의 금품수수에 이은 봐주기 관행이 땜질식의 일회성 비리로 관행화한 것이라면,소방시설 점검을 소홀히 한 술집 극장 호텔 병원 업주로부터 돈을 받고 묵인해주는 소방공무원들의 비리는 이 건물들에 아예 폭발물을 던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91년에 비리행위자로 적발된 서울시 소방본부 소속 공무원 3백82명중 파면 등 중징계를 받은 25명은 위험물 설치허가 또는 소방검사와 관련해 식사비,교통비 등의 명목으로 돈을 받거나 부하직원들로부터 뇌물을 받았다가 적발된 경우였다.
같은해 9월 경찰청이 파헤친 서울시내 일부 소방서장 등 소방공무원들의 비리는 세무공무원들의 비리만큼이나 캐내기 어려웠던 구조적인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경찰청 특수대에 구속된 일선 소방서장 등 7명의 비리는 우선 소방서 지도계 외근직원 2명이 1조가 되어 하루에 관내 3∼4개 업소를 돌며 업소당 3만∼5만원씩을 뜯는 것에서 시작됐다.
이들은 11층 이상 고층건물과 화재에 취약한 일류호텔 병원 등은 특별 안전점검 대상업소로 지정돼 수시로 점검할 수 있는 점을 악용,일류호텔은 매달 10만원씩,대형음식점이나 유흥업소 등에선 3만∼5만원씩 정기적으로 돈을 받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게 거둔 돈을 주말마다 갹출해 이중 일부를 서장 과장 계장 등 상급자별로 15만∼20만원씩 정기적으로 상납했다.
특히 하급 직원들은 「노른자위」지역으로 옮기기 위해 서장 등 상급자에게 2백만원까지 뇌물을 주며 인사 청탁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 소방공무원은 『관내 업소에 대한 수시·정기·특별 소방점검을 하는 일선 지도계 직원들 사이에 비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점검을 나가기만 하면 돈봉투를 쥐어주고 적당히 넘어가려는 업소들의 행태로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또다른 소방관련 비리유형은 소방설비공사 및 면허제도를 둘러싼 부조리. 주로 대형건물의 소방설비를 할 수 있는 면허를 가진 업자들이 도급받은 일부 시설공사를 하도급할 수 있는 규정을 악용해 무면허,무자격 업자에게 하도급하고 관할소방서가 건물 준공검사를 하면서 묵인해주거나 감독을 적당히 해주는 과정에서 생기는 비리도 비일비재하지만 노출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하종오기자>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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