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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사의 수사학/김성우(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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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사의 수사학/김성우(문화칼럼)

입력
1993.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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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대통령의 취임사는 통치이념과 비전의 표현이다. 이끌고갈 나라의 꿈과 희망을 그린다. 국민의 힘을 약동시키고 열정을 끓게 하기 위해 결의와 의지를 천명하는 선언문이다. 앞으로 행할 모든 시정연설의 전문이기도 하다.대통령의 취임사는 발진의 나팔소리다. 앉았던 국민을 일어서게 하고 일어선 국민을 나아가게 한다. 그럴 만큼 우렁차야 한다. 또 취임사는 새 대통령의 이미지를 만든다. 강렬하고 선명한 인상화다. 그러자면 선묘가 절묘해야 한다. 취임사는 국민의 심금을 울리자는 것이다. 어구는 한마디 한마디에 함축미가 있어야 하고 어법은 드라매틱하기도 해야 한다. 취임사가 반드시 문학은 아니더라도 문학적 감동은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취임사는 수사적일 수 밖에 없다. 다양한 비유와 은유를 동원하고 현란한 미사여구로 장식되게 마련이다. 그맛에 온국민은 숨죽이고 취임사에 귀기울인다. 취임식은 취임사를 듣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효과적인 언어표현의 방법으로 발달되어온 수사학은 당초 웅변가들을 위한 것이었다. 당시의 그리스 민주정치에는 설득의 기술이 필요했다. 르네상스이후 인쇄술의 일반화로 언어가 말하는 것에서 쓰는 것으로 중점이 옮겨지면서 수사학은 매력적인 문장작법이 되어 「효과적인 문장의 기교」란 뜻으로 쓰여왔다. 언어에 문채를 새기는 일이었다. 근대에 들어 언어표현의 형식보다는 실질적인 사상내용이 중요하다는 언어관에 따라 고전적 수사학은 시들어 버리는듯 하더니 근년에 와서 이 언어관에 대한 반성이 일어 내용은 표현을 떠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표현은 내용을 결정짓는 본질적인 것이라는 인식이 다시 대두되기 시작했다.

수사학의 목적이 말에서 글로 이행되기 이전에도 고대 로마의 웅변가들은 곧 문장가들이었다. 로마 최대의 변론가로 꼽히는 키케로는 라틴어 산문의 제일인자이기도 하다. 라틴어의 미묘한 억양을 구사하는데 통달했던 그는 문학사적으로도 라틴문학의 황금시대를 이룬 사람이다. 그와 함께 당시 또하나 산문의 대가가 시저였다. 시저라면 정치가로만 알기 쉽지만 그는 청년시절부터 변론가로 이름을 떨쳤고 그의 간명한 문장은 키케로와 나란히 고전 라틴산문의 모범으로 일컬어져 온다.

예부터 이렇게 명연설과 명문장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근대에 와서는 의회제도의 성립과 함께 연설의 무대가 의회로 옮겨지게 되지만,의회주의의 영국만해도 유명한 연설에 에드먼드 버크나 리처드 셰리던,그리고 윈스턴 처칠 등은 명문필가들이었다.

중국에는 예부터 「문장흥국」이란 말이 있다. 왕조시대에 왕의 저서가 대문장가의 명문일 때 그 문장 하나만으로도 그 왕조의 인기가 높아졌다. 명나라의 건국초기 개국공신이자 문인이던 송렴이 쓴 조칙 덕택으로 북방의 사대부들이 남방정권이던 명조를 지지하기에 이르렀다. 명나라 태조는 그래서 관리임용에 처음은 과거제도를 시행하게 된다.

이렇게 문장이 나라를 살린다. 신임 대통령의 취임사도 그 문장에 따라 나라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

대통령의 취임사중에서는 문예취미가 있던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 것이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 국민 여러분,여러분의 나라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말고 여러분이 여러분의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으십시오. 그리고 세계의 시민여러분,미국이 어려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지말고 인간의 자유를 위해 우리가 함께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으십시오』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의 이 연설에서 『두려워서 협상하지 맙시다. 그러나 협상을 두려워하지도 맙시다』라는 말도 남겼다.

이 연설이 유명한 것은 그 속에 무슨 새로운 세계적 대계가 들어 있어서가 아니다. 번뜩이는 수사 때문이다. 가령 같은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1933년에 첫 취임을 하면서 행한 연설 가운데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자체라고 나는 확신한다』는 구절이 명구로 전하는 것은 역시 그 희어의 매력 덕택이다.

지난달 취임한 클린턴 대통령의 취임사는 선거유세때 연설의 되풀이였다고 과히 평판이 좋지 않았다. 어차피 정책방향은 선거때보다 새로운 것일 수가 없다. 취임사는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에 달렸다.

지난주 취임한 우리의 김영삼 새대통령은 「교과서에 남을만한 명문」의 취임사를 구상했다고 한다.

길이 남을 취임사는 웅혼한 문장의 역동감이 있어야 하고 때로는 꽃바구니에 주워 담을 아포리즘의 향기도 섞여야 한다. 직소로 국민의 가슴을 두드리기도 하고 메타포로 가슴안을 울렁이게도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수사학의 영역이다. 대통령의 취임사는 대문장이라야하고 당대 명문의 모범이라야 한다. 김영삼대통령의 취임사를 다시 읽어보자.<본사 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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